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애틋함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했다. 부모님께 받은 신체는 귀한 것이니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했던 말처럼 효를 다할 정도로 신체를 손상시키지 않고 자라지는 못했지만, 부모님께 받은 것 중 여전히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내 섬섬옥수라 말할 수 있겠다. 손이 희고 가늘고 긴 편이라, 어렸을 때는 손 모델 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의도 많이 들었더랬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살아남은 손에 대한 자존감은 늘 내 마음속 어딘가 조그맣게 자리 잡은 자랑거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나 고운 내 손인데- 내 손이 너무 예뻐 머쓱해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삼십 대에 접어들며 나는 새로운 가족 관계에 적응해야 했다. 반려자인 나의 남편의 가족.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나는 엄마가 둘이 되고 아빠가 둘이 됐다. 없던 여동생도 새로 생겼다. 어른들을 몹시 대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 내 사회생활의 아킬레스건이었고, 자연히 주로 어른들로 이루어진 새 가족을 대하는 것은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내게 엄청난 허들이었다. 연락하는 것도, 얼굴을 마주 보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들려드리는 것도, 그저 어머님 아버님, 하고 불러보는 것도 어색한 것투성이. 하기야 제 친엄마를 대하는 것도 무뚝뚝하기 그지없는데, 새로 맞은 어머님 아버님이 어려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명절이 되면 가는 어머님 댁 거실에는 식사를 하는 원목 탁자가 벽에 붙어 놓여있다. 무게가 꽤 나가는 것이라 식사 시간이 되면 늘 아버님이나 반려자 친구가 수고를 해서 거실 중앙으로 탁자를 끌어놓아 준다. 식탁 위에는 휘뚜루마뚜루 만드셨지만 어쩐지 맛이 있는 반찬들이 빈틈없이 들어차고, 중간에 놓이는 커다란 냄비에서는 가족들이 저마다의 손으로 국자를 움직여가며 빈 그릇을 따끈한 국물로 채운다. 식사는 재빠르게 이어진다. 어머님의 빠른 음식 제조 솜씨가 없었더라면 없거나 몹시 어려워졌을 일이다. 식사가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어머님과 아버님은 일상 속 이야깃거리를 식탁 위로 꺼내 올리신다. 고용주에 대한 이야기, 너무 값이 올라버린 최근의 과일에 대한 푸념, 나와 반려자의 회사생활에 대한 각종 우려가 주 소재가 된다. 어머님은 가끔 말씀하시면서 손을 쓰시는데, 그날- 언제인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 그저 결혼생활 초창기 중 아무 날로 기억되는 그날, 나는 그 손을 보고 마음이 얼어붙어 버렸다.
움직이는 어머님 손 마디마디가 너무 굵었다. 정갈하고 매끈한 내 손이 그저 어머님보다 몇십 년 젊어서 다른 것이 아닌 손가락이었다. 나이만으로 늙어지지 않은 마디마디. 어머님의 아무렇지 않은 제스처 속에 움직였다 멎었다 하는 손 마디마디가 너무 굵고 거칠어서, 나는 그 손을 바라보며 어쩐지 내 예쁘장한 손을 자꾸 등 뒤로 감추고만 싶었다.
우리 엄마는 남편 복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었다. 맞벌이하면서 직장 생활을 분명히 아빠 엄마가 같이했는데, 아빠는 아빠 몫을 자주 까먹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제 몫만 건사하는 것도 감지덕지인 수준이었다. 아빠는 자꾸만 바닥을 드러내는 자신의 주머니를 엄마의 주머니로 채우려고 했다. 엄마는 이내 그것에 질려버려서는 더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런 우리 집에서, 아빠 몫에 매번 실패하고 헤매던 아빠와 엄마가 수없이 부딪쳤어도 엄마의 손마디가 그렇게까지 굵어지지는 않았다. 비단 내게 예쁜 손을 물려줄 수 있던 유전자가 엄마에게 있던 것이 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 순간들이 어머님에게 들이닥쳤을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얼마나 어려운 일들을 통과하시며 나이 드셨는지를 내가 상상하는 것조차 주제넘은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나는 그날, 어머님 손이 말없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들은 것만 같았다.
살림을 다독이며 가끔은 구멍 뚫린 듯 빠져나가는 살림의 요소들과 휘청이는 가정을 지키느라, 자꾸만 생겨나는 구멍들과 작은 틈들을 온 두 손으로 겨우겨우 막아내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가끔은 조금 힘들고 지쳐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사랑하는 아들딸, 그 자식들과 이룬 가정이 너무도 소중해 한 번도 뿌리칠 수 없었다고. 그 가정을 오롯이 지키는데 열중하다 보니 온몸이 부서지라 애쓰는 동안 애쓰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고.
어머님이 기대하셨던 것만큼 살갑고 따뜻한 며느리는 몇 밤 지나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약속드릴 자신도 없다. 눈이 내리면 눈이 오네요, 비가 오면 비가 오는데 괜찮으시냐 한 마디 묻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버벅대는 내 모습은 그저 초라하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다만 단 한 가지. 어머님 손 앞에 부끄러워졌던 그날, 내 예쁜 손이 부끄러웠던 그 느낌만은 잊지 않을 것이다.
작년보다 올해 더, 올해보다는 내년에 조금 더 괜찮은 며느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키가 크고 참 날씬하신, 한참이나 나이를 덜 먹은 나보다도 결이 고운 피부를 가진 어머님이 누리셔야 마땅한 세상의 좋은 것들을 찾아 손에 한가득 쥐여드리고 싶다. 놓칠 틈 따위 보이지 않게, 아니 설사 놓치셔도 다시 손안에 꼭꼭 쥐여드릴 테다. 줘도 줘도 모자라다 하시는 우리 엄마와 같은 언어를 쓰시는 어머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마땅히 누리셔야 했던 것들을 모조리 놓아버리고도 놓친 줄 모르고 내내 먼발치에서 아들내미 뒷모습이 사라지도록 훔쳐만 보시는 어머님에 대한 애틋함으로.
이런 식으로 조금씩 이뤄지는지도 모른다. 기혼자의 가족맞이라는 것은.
(TMI: 이 글 커버 사진이 제 손인데 생각만큼 섬섬옥수가 아니라면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