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잠수부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아득함
한평생 엄마의 편애* 속에 자랐다고 생각했다.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삼 남매 중 둘째, 특히나 딸-딸-아들의 둘째 딸이 짊어져야 할 숙명 비슷한 것이기에. 그럼에도 이따금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이 꽤 자주 애틋해진다는 걸 인지하며 나 좀 나이 드나 보다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다. 8월 27일의 그날은, 유독 더 그런 날이었다.
통화도 잘 하지 않는다. 문자도. 정말 가끔 ‘필요할 때’ 겨우 연락하는 무뚝뚝한 딸일 뿐, 엄마와 딸의 살가운 관계 같은 것은 나에게 꽤나 먼 그림이랄까. 며칠 전에 연락했었는데 또 며칠 지나지 않아서 엄마에게 연락이 온 그날도, 속으론 무슨 일이지 싶었다.
요즘 퇴근 시간은 어떤지, 밤새 본가 있는 쪽엔 비가 꽤 왔는데 여긴 별일 없는지, 곧 있을 내 오키나와로의 여행은 언제인지 묻기에 ‘비 많이 와요, 오키나와는 목요일에 가요’ 하고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덤덤히 손을 놀리는 중이었다. 오키나와의 날씨에 대한, 실은 의미 없고 효력도 없는 예측을 모녀가 주고받으며, 나는 푸념처럼 하필 이번 주가 여행 전인데 제일 바빠 짐을 쌀 시간이 있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뒤이어 덜컹, 지하철이 크게 출렁일 때 뜨는 텍스트에 잠깐 가슴이 덜컹, 같이 철렁였다.
사실 오늘 너 퇴근 무렵 열무김치 갖다 주고 오려 했었다. 백합 조개도.... 근데 날씨도 너무 안 좋고 너도 마이 바쁜 것 같아 패스해야 될 듯.
누구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라 나도 특히나 좋아하는 엄마의 열무김치, 그리고 엄마가 또 열심히 어디선가 캐왔을 조개. 그걸 주려고 평일 저녁에 두 시간 거리인 서울까지 오려고 했었다는 게, 또 그런 귀한 방문을 내가 내팽개칠 뻔했다는 게 갑자기 아찔하리만큼 죄송스러워서 급하게 더 둘러댔다. 오늘은 야근 안 해요, 하며 오늘 저녁에 오셔도 된다고. 마침 엄마를 위해 집 근처 옷가게에서 사뒀던 엄마 선물도 생각이 났다. 추석 전에 드릴 수 있었으면 했는데 다행이네, 퇴근길에 급히 집에 들러 선물을 챙겼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엄마를 만났다.
이 세상 엄마들은 뭐 그렇게 주고 싶으신 게 그다지도 많을까. 엄마는 정말 ‘한 짐’을 들 고 오셨다. 양손에 가득 들린 짐이 두 쪽 다 무거워 보이기에 한 손에 들린 걸 받아 들었다. 엄청 무거운데 보관소에 맡겨놓고 돌아다니자고 했더니, 왜 그런 데 돈을 쓰냐는 듯이 요 근처 잠깐 돌아다닐 건데 뭐 그러냐며 그냥 들고 다니시겠단다. 저녁 식사도 그저 대합실 근처 순두부찌개면 족하다 하시는 엄마를 겨우겨우 한정식 가게에 모셔 가서 나름 정갈하고 갖춰진 한 끼를 들었다. 내심 눈치를 보며, 엄마가 맛있다 하시기에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히 꽤 맛있던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다시 본가로 내려가실 엄마를 위해 표를 끊어드리고 헤어짐을 준비하는 길엔 백화점 로비가 보였다. 얼마 전 포르투갈 여행을 갈 때 엄마가 사달라던 화장품을 끝끝내 사드리지 못한 게 생각나 여쭤보니 역시 아직 장만 못 하셨단다. 백화점 마감 시간 5분을 남기고 급히 들어가 사고 싶으셨다던 화장품을 사서 품에 안겨드렸다. 오늘 나 좀 기특하다, 마음속 자화자찬도 잊지 않았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 엄마가 타야 할 버스 앞에서 엄마가 손에 꼭 붙들고 다니던 짐을 건네받았다. 어라, 너무 무겁다. 눈물이 핑 돈다. 두 손에 엄마가 여기까지 들고 온 모 든 짐을 힘겹게 들고, 멀찍이 서서 엄마가 탄 버스가 떠나가는 걸 바라보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팔이 늘어진다. 축. 이거 왜 이렇게..., 축. 무거워. 무게를 견디지 못해 팔이 축축 늘 어질 때마다 눈앞이 자꾸 흐려져 다섯 걸음마다 걸음을 고쳐 걷게 된다. 나보다 족히 10cm는 작은 엄마가 이걸 오후 내내 들고 다니셨구나. 그제야 그려진다. 열무김치를 넣고, ‘우리 둘째 갖다 줘야지’, 시장에서 깻잎을 사 와 양념을 만들고 깻잎을 재웠을 엄마의 아침이. 그날 뭔가 뿌듯한 일을 해야지 생각했다던 엄마가 바쁘다는 딸의 문자에 가지 말까, 못내 주저하기도 했을 그 아침이.
집에 돌아와 저린 팔로 짐 꾸러미를 풀었다. 너무 좋아하는 엄마의 열무김치 두 통에, 오늘 했다던 깻잎 김치에, 백합 조개가 족히 백 개는 든 듯 커다란 지퍼백. 상하지 말라고 넣어둔 얼린 생수에, 보냉팩에, 챙겨 먹으라고 꾸역꾸역 넣어둔 삶은 고구마, 그리고 대추야자.... 이 무거운 걸 들고 집에서 나와서 터미널까지 가서, 날 만나서도 더 무거운 건 당신이 들고 식당까지 갔다가,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야 겨우 이걸 건네주셨구나. 젊은 나도 힘든데, 환갑이 다 되신 엄마가 내색도 하지 않고 그 짐을 다 들고 돌아다니신 걸 생각하니 또 울컥. 그날 밤은 내내 마음이 울컥거렸다.
내가 우쭐하며 엄마한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따금 한다 해도 난 엄마의 사랑을 새 발의 피도 못 따라가겠구나. 이렇게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는 늘 허우적대는 잠수부가 된 듯, 깊이 내려가면 갈수록 심해의 깊이에 압도당하기만 하는 것이다. 아마도 평생을 더 내려가도 끝끝내 끝에 닿지는 못하겠지. 언젠가 나를 닮은 생명을 낳고 그 아이를 길러도 또 다른 바다를 키우며 엄마를 이해하게 될 뿐, ‘나를 사랑하는 엄마’를 ‘엄마를 사랑하는 나’는 아마 영영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한평생 엄마의 편애 속에 자랐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그 생각을 깨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 나의 관계에선 나는 늘 허우적대는 서투른 잠수부에 불과할 것임을 인정한다. 강은 바다만큼 넓어질 수 없고, 강물은 아래로만 흐를 테니.
* 편애의 대상이 나는 아니었다. 말 잘 듣고 착한 언니, 나이터울이 큰 남동생이 태어나고선 남동생이 유일한 편애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