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비통함
‘해변에서는 숨이 가쁘다’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작년 11월 말, 이슬아 작가와 김선오 시인이 함께 하는 《나이트 사커》 낭독회에서 그 시를 처음 들었다. 시집에 있는 시들을 미리 읽어보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 시들을 낭독회를 통해 시인과 그의 지음(知音)의 나직한 음성으로 듣는 순간이 그 시에 대한 최초의 경험이었으면 해서였다.
친구들이 잠수하고 / 친구들은 사라지고
그 대목에서 나는 정면을 바라보기가 조금 어려워졌다. 슬픔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으므로.
김선오 시인의 낮은 음성으로 시는 한 구절 한 구절 펼쳐졌다. 시를 최초로 겪는 탓에 다음 구절을 상상할 능력이 없는 나는 가만히 비처럼 내려오는 낭송을 맞았다.
아무도 튀어 오르지 않는다 //
그림이 찢어지기 전에 /
물 밖으로 나와줄 수 있어? //
종이와 파도가 동시에 뒤척인다 /
바람 때문에 너희가 잘 안 보여
눈물이 고였다.
그 구절을 듣는 나는 진도 팽목항 위에 있었다.
2018년 목포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 바다〉라는 영화가 개봉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봄날이었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는 것도 일종의 응원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티켓 두 장을 끊었다. 감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걷어내고 인과관계를 다룬 영화였음에도 110분 러닝 타임을 눈물 없이 버티기는 어려웠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고, 얼마 후 나는 진도 팽목항으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녹슨 철근과 자갈이 나뒹구는 공간에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정차한 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압도적으로 내려앉는 공기의 묵직함에 소름이 돋았다. 휑한 컨테이너 분향소를 가득 채운 영정사진은 까무러칠 정도로 숫자가 많았다. 테이블 위엔 초코 파이나 새우깡 같은, 조그만 봉지과자들이 한 움큼. 올려진 게 고작 과자들이라 너무 서글퍼진 나는 연신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햇빛은 여러 개의 이마 위에 머물고
다시 그날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회사 식당에 있었다. 식당 테이블 위를 에워싼 TV 모니터들이 일제히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했고, 선체가 한참이나 기울어 있지만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심장이 뚝 떨어지다 다시 올라 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던 그 소식이 오보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전원 구조가 오보로 밝혀지고, 실종자 수가 하염없이 불어났다.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 앞에 목놓아 울던 어느 어머니의 절규 위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님들의 염원이 겹겹이 쌓였다.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났다. 세월호 참사라는 다섯 글자로는 줄일 수 없는 고통과 신음의 시절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실종자들이 한시라도 빨리 가족 곁으로 돌아오라고 그 흔한 문자 하나 남기지 못했고, 유가족 분들에게 십원 한 푼 기부하지도 못했다. 2018년, 진도 팽목항을 다녀온 것이 세월호에 관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체가 있는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반대편 관자놀이를 툭툭 치면 /
귀 밖으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
낭독이 끝났다. 진도 팽목항에서, 4월 16일 TV 스크린이 에워싼 식당 테이블 위까지 돌아다니던 나의 발걸음도 낭독의 종료와 함께 멈추었다. 김선오 시인은 어떤 순간을 보고 이 시를 쓰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친구들과 따뜻하고 다정한 한때를 보냈던 순간을 떠올리며 쓴 시라고 했다. 내가 상상했던 슬픔을 그린 시가 아니어서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낭독한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 수 있었다. 손을 들었다. 저는 오늘 이 시를 김선오 시인님의 낭독으로 처음 들었는데,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고. 말을 이어가려는데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세월호를 생각하며 들었다는 문장을 완성해 내뱉기가 너무 힘에 부쳤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스탭 분이 티슈를 한 뭉텅이 갖다 주셨다. 하염없이 솟아나는 눈물을 닦아내는 동안 모종의 속죄라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울음을 차마 수습하지 못한 채 나는 물었다. 처음 시인에게서 출발했던 시상과 독자의 감상이 이토록 판이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김선오 시인은 독자의 다양한 감상을 환영한다고 했고, 그 옆에 앉아 있던 이슬아 작가는 그날 이후 ‘바다’라는 단어는 전과 같이 쓰일 수 없게 되었다고, 전과 같이 읽을 수 없는 단어들과 문장이 생기는 것은 그날을 겪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상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이전과는 달라지는 단어들을 마주하고 끌어안고 울고 가슴 사무쳐하는 일. ‘바다’라는 단어만 입속에 머금어도 눈물이 솟아오르는 일.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일. 이제는 그만 잊어도 되지 않냐고,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일.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의 실종자를 생각하는 일. 단원고 2학년 6반 남현철 군, 박영인 군.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던져 줬던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님, 권재근 님의 여섯 살배기 아들 권혁규 군. 그 다섯 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묵념하는 일.
그런 일들을 기꺼이 거듭하며 올해도 내년에도 그 이름들을, 그 바다를 잊지 않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고작 이런 일들 뿐이겠지.
낭독회를 빠져나와 덜컹거리는 지하철 열차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무겁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그날이 온다.
사무치는 4월의 그날이.
제목의 〈체온과 미래〉는 본문의 중간중간에 들어간 김선오 시인의 시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