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다’ 하는 확신

식은 커피와 시큰거림

by 임우유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쓰라림



식은 커피와

시큰거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었어? 언니, 언제 이 사람이랑 결혼할 것 같다는 확신이 진짜 와? ‘이 사람이다’ 하는 게 느껴지긴 했어?


 어느덧 유부초밥 5년 차에 접어들게 되는 동안 꽤 여러 차례 비슷한 유형의 질문을 받았더랬다. 내 대답은 ‘네니오’ 정도? 지금의 반려인간을 만난 순간 귀에서 종이 딩딩 울린다거나 뭐 그런 일은 전혀 없었고, 그저 처음 마주하는 순간 어쩐지 이 사람과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에 사로잡혔을 뿐이기 때문이다. 외모가 모든 사랑을 좌지우지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든 사랑의 예선전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외모가 출중하기로 소문났던 그에 비해 평범했던 내게 왜 그런 확신이 찾아왔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처음 반려인과의 조우 이후 꽤 오랜 시간이 그냥 아는 사이에서 머무른 채 흘렀다. 나도 다른 사람과 꽤 긴 시간을 만났고, 그 역시 캠퍼스 안에서 공개 연애를 두 번이나 하는 것을 지켜보며 괜한 생각을 했었나 싶었다. 3학년 2학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던 어느 토요일 오후, 말도 안 되게 그와 엮이며 밀알 같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그 확신은 사실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충만한 연애 초기와 설렘보다 편안함의 크기가 더 커지는 중반부를 모두 거치며 나는 그보다 먼저 사회로 진출하게 됐다. 학생 때와는 다른 인간관계와 학생 때는 없던 돈을 벌게 되며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으로서의 세계에 물들어갔다. 싸움의 원인이 다양해지고, 서로에게 낼 수 있는 상처의 깊이도 깊어졌다. 그러다 그에게 새로 생긴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였을 것이다. 그는 돌연 내게 이별을 선언했다. 이따금 크게 싸우고 나서 몇 번 헤어지자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고 그때마다 재회에 꾸역꾸역 성공해왔었던 사이였지만 이번 이별만큼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멀어지는 발걸음을 잡을 만큼의 에너지도 소진된 뒤였으므로. 잡지 않겠노라 결심했고, 그에게 알겠다 말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음으로써 그 결심은 적절히 이행됐다. 이 정도 했으면 그와는 영영 안녕이었어도 전혀 이상할 구석이 없는데- 그 이별로부터 2년 반이 지난 뒤 나는 그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 곳은 윤중로 근처 어느 스타벅스였다.




 벚꽃의 얼굴이 가장 예쁜 4월 초. 본가가 대전이었는데, 그날은 서울에 사는 친구와 놀고 하룻밤을 친구네에서 묵어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얽혀있지 않은 채로 친구들과 만나고 혼자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상은 제법 즐거웠다. 스물하나 이후 일상을 함께 해오던 누군가가 늘 있었기에 헤어짐 뒤의 일상이 선도가 매우 좋았던 것이다.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느지막이 친구네로 돌아와 이부자리에 늘어지게 뻗어 누웠다. 누워서는 다음에 새로 만나게 될 사람의 윤곽을 어렴풋하게 상상하며 새벽 시간을 축냈다.


 잠에 든 나를 깨웠던 건 첫새벽의 진동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날 찾을 리가 없는데 누구지, 하며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불과 보름 전 헤어지자고 말했던 그였다. 헤어지자고 해놓고 웬 전화야, 하려는데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그 말을 뱉는 목소리가 지독히도 잠긴 목소리라 놀라서 눈이 다시 떠졌다.


 “나 지금 너네 집 앞이야.”

 “(……뭐라고?) 나 지금 서울 친구 넨데.”

 “……지금 갈게.”


 나의 소재를 확인하고선 아득한 한숨을 내쉬면서도 있는 곳으로 오겠다기에 주소를 찍어 보냈다. 동이 터오는 아침의 초입쯤 자고 있던 친구에게 정말 미안한데 지금 나가봐야겠다고 말하고선 바스락거리며 친구 집을 빠져나왔다. 모퉁이를 돌자 서 있는 익숙한 자동차. 수분감이 쪽 빠져 있는 그가 그 안에 있었다.


 대뜸 어디 가고 싶은 데가 없냐고 묻는다. 우리 헤어졌는데 어딜 가야 좋은 걸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그중에 가고 싶던 곳은 없었나 떠올려보니 있긴 있었다. 윤중로였다. 좋아하는 배우가 여의도 근처 방송국에서 심야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오프닝멘트로 근사한 길이라며 추천했던 곳이었다. 이른 시간이니 사람도 없을 거고, 적당히 거리 두고 걸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윤중로에 도착해선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애매한 거리를 두고 서로 별말도 없이 정직하게 걷기만 했던 것 같다. 말없이 걸으려니 길이 제법 길고 어색했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데이트코스로 참 여기저기 많이 산책했었는데 그때 그 산책은 걸음을 처음 배워서 하는 것처럼 어설펐다. 그나마 걷기 시작한 곳이 있으니 길이 끝나는 곳도 있어 다행이었다. 어떡하지, 이제 여기서 다시 헤어지면 되는 건가? 속으로 계산하고 있을 때 그는 카페에 잠시 들르자고 제안했다. 윤중로 근처 스타벅스엔 그렇게 들어가게 됐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던 것 같다. 내가 뭘 시켰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기억나는 건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초록색 세이렌이 그려진 상아색 머그컵에 담긴 커피. 식어가던 커피. 그 머그컵 뒤로 보이던 그의 다 해져버린 얼굴. 만나온 천여 일 정도 되는 날 중에 가장 처참한 몰골이었다. 아닌 새벽에 대전에서 운전해서 서울까지 올라왔으니 피곤했겠지, 물론 그랬겠지만 피곤함만이 만들어낸 몰골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속절없이 울었다. 보고 운 게 아니라 보는데 눈물이 나고 있었다. 보름 만에 나를 다시 불러내건 뭘 했건, 가는 발걸음을 잡을 에너지가 바닥이 났었건 어쨌건, 그 순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됐다. 아직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와 정말로 이별하는 순간은 쉬이 찾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식은 커피를 두고 울었던 것이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신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비겁한 이유로 골라 들어간 카페. 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자리였다. 다 식어가는 커피 앞에서, 자기가 헤어지자고 하는 거면서 염치없게 그날도 펑펑 울었었다. 휴지가 바닥나도록 눈물을 닦아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이별 당한 사람이 떠난 뒤에도 혼자 남아 한참을 울다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그랬지, 그런 날도 있었다.




 다시 윤중로 스타벅스로 돌아와서, 그날의 최종 결론은 이별을 유예해보자는 것이었다. 서울까지 새벽부터 달려온 그의 제안이었고, 그와 이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 내가 받아들인 결론이었다. 결국은 그날의 예상도 적중했다. 그와 나는 참 질기고 길게 만났고, 그로부터 세 번의 가을을 더 지나 서로를 반려인으로 삼게 됐다.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소중하다가도 자주 싸우고 서로를 할퀴는 미성숙한 일상에 지칠 때 그 식은 커피가 담긴 상아색 머그컵 뒤, 다 해져 있던 얼굴을 가끔 떠올린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단숨에 두 눈이 뜨겁게 시큰해진다. 그럴 때면 그 시큰거림을, 내 눈을 시큰거리게 하는 그 사람만을 나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