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마모되며 사는 것

by 임우유
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안온함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마모되며 사는 것


 재택근무로 식탁 위에서 업무를 막 끝마친 내 뒤를 서성이는 그림자 주인을 바라본다. 저 인간과, 아니 저 사람과, 만난 지 올해 10주년이 되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다시 곱씹어본다. 내 취향은 왜 여적 저 사람에게서 못 벗어났을까?


 지독한 얼빠라서, 그것이 이유렷다. 처음 만난 그 순간 나는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저 친구의 외모가 지극히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잘 생겼네, 시장 구석에서 국밥집을 하는 쉰여섯 살 아주머니처럼 속으로 그렇게 읊조렸다. 저거 참 잘 생겼단 말이지…?

 닮은 것 같아서, 그게 두 번째 이유였다. 대충 똑똑하기는 똑똑한데 시험 전날까지 퍼질러 놀다가 마지막 밤에 가서야 공부를 시작하는 인간. 그렇게 해놓고도 그다지 시험을 말아먹지는 않는 인간.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리트머스 종이에 용액 갖다 댄 것처럼 얼굴이 사악- 나빠지고 좋아지는 게 투명하게 보이는 사람. 불의를 혐오하고, 정의와 예의를 좇는 사람. 면전에 대고 여자친구(네 저요) 흉보는 못되고 질 나쁜 선배에게 대놓고 직언을 날릴 수 있는 팔불출. 맞춤법 틀린 것 보면 질색하는 사람. 언어에 대한 감이 꽤 있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할 줄 아는 사람. 의리가 조금 있어서 친한 사람이 어디 가서 얻어터지면 얻어터지는 거 잘 봐뒀다가* 기회 봐서 얻어터지게 한 사람을 몰래 멕여줄 수 있는 사람. 비슷한 데서 가슴 아파하고, 울고 웃는 이유와 근육이 닮은.

 얼빠 기질을 못 버리고, 닮은 점들만 인지했던 탓에 나는 저 인간, 아 아니 사람과의 연애를 덜컥 받아들여 버렸다. 황금의 연애 초기라는 스케치 이후에 지옥의 채색 과정도 있다는 걸 모를 수밖에 없다는 건 복일까 불행일까. 아, 거참, 스케치는 진짜 잘 됐는데 채색이 진짜 어려워 돌아버릴 지경일 줄은 염라도 몰라 며느리도 몰랐던 것이었다.


 시뮬레이션으론 우아하게 웨딩 마치도 울렸는데 실전을 시작하자마자 넘어지기 일쑤였다. 무릎에 생채기가 났다. 이따금 생채기가 난 무르팍 위로 모래도 한 바가지 쏟아졌다. 닮은 줄 알았던 그는 나와 너무나도 달랐다.

 사과를 하기에 앞서 서로의 과정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나, 과정 따위 됐고 사실에 대한 명확한 인지와 빠른 사과를 원하는 쟤. 여행이라도 갈 땐 느그으으읏하게 일어나 아무 지도나 대충 보면서 동선을 순간의 기호에 따라 정하는 나, Plan B, B-1까지 생각해놓는 쟤. 어른이 너무 대하기 어렵고, 그래서 가끔은 핸드폰에 걸려 오는 우리 엄마 전화도 못 본 체하는, 효도는 애저녁에 2000년대 초반 옥션에 팔아버린 나와 잊을 만하면 장모님께 안부 전화 드려서 내가 불효녀임을 시도 때도 없이 상기시키는 사람. 아무리 싸워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사랑한다고 외칠 준비를 하는 나와 달리 화나고 상처 입은 마음을 숙취가 오지는 날 전날 먹었던 음식처럼 되새김질하다가 사귈 땐 ‘헤어져’, 결혼해선 ‘이혼해’로 내뿜는 인간. 사회에서 갖은 인간사에 지쳐 넝마가 돼 온 나에게 해결책을 턱 밑까지 들이미는 사람. 별로 웃기지도 않은 걸 자꾸 인스타그램에서 찾아서 DM 잔치 벌이는 이상한 친구…….




 다른 만큼 많이 넘어지고, 넘어질 때의 충격 그 이상으로 반동을 줘서 다시 일어나길 반복하다 보니 함께한 지 어느덧 삼천육백팔십 일이 되었다. 스물셋부터 서른셋까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기를 모두 한 사람과 통과해왔다는 것은 일견 대견하기도, 어찌 보면 소름 돋게 징글맞기도 하다. 싸울 땐 제 손톱이 다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게 피 흘리며 서로를 할퀴어대는 우리가,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이 오랜 시간을 손바닥 부비고 볼 맞대며 지나온 일일지 모를 일이다. 닮은 줄 알았는데 진짜 안 닮았는데. 이젠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망가뜨리고 상처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도가 텄는데.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떠올려본다. 반올림해서 사천 일 땡길(!) 수 있던 동력이 무엇일지.

 손을 착, 하고 잡으면 정말 운명인가 싶게 자석처럼 빈틈없이 달라붙는 우리 손. 잠들기 전, 내가 왼쪽으로 덮이듯 안겨 누워 서로의 심장이 가장 가까워질 때 세 번에 한 번쯤 겹치는 심장박동에 같은 고도로 오르내리는 흉곽이 주는 평안함. 우스꽝스러운 춤을 춰댈 때마다 얼굴 찢어지게 웃으면서도 속으론 약간 사랑스러워하는 이 근성 있는 나의 애정. 측은지심이 비슷하게 발동하는 쟤의 눈매. 그 눈매를 알아보는 내 지각. 진도 팽목항에 갔던 날, 내 것과 같은 무게의 슬픔을 느끼던 쟤의 얼굴. 내가 죽는 꿈을 꾸었다던 날 어린 애처럼 펑펑 울던, 나보다 큰 체구의 저 남자를 다독이던 어느 밤의 뭉클한 기억. 한참 어릴 때보단 좀 상했(?)지만 여전히 내 스타일로다가 참 반듯하게 건청**처럼 잘 생긴 저 얼굴. (아, 역시 얼굴인가!)


 닮은 건지, 다른 건지 여전히 헷갈리게 하는 저 남자애는 지금 요상한 춤을 추며 나를 위한 제주 영귤차를 내린다. 휴가라고 빠져서는 면도도 제대로 안 하고 널브러진 머리칼을 모자처럼 쓰고선 일부러 퉁명스러운 얼굴로 차를 내어준다. 앗뜨뜨거운 차에 혓바닥을 데일 뻔하면서 차를 삼키다 나는 이내 저 남자애와 내가 닮았나 안 닮았나 따지기를 포기해버린다. 안 닮았으면 안 닮은 대로, 닮았으면 닮은 대로 계속 모서리를 뭉개며 한 그릇에 웅크려있고 싶어지니까. 네가 네모라면 원을 닮은 모양이 될 때까지, 내가 원이라면 너를 닮은 네모 비슷한 모양이 돼버릴 때까지. 너를 닮은 조그만 아이를 언젠가 낳을지 말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둘이서든 셋이서든 행복하게만 살 수 있다면. 평생에 걸쳐 아주 조금씩 내 모든 면과 모서리를 마모시켜야 한다 해도, 결국 지켜낼 수 있는 게 이 조그만 행복이라면 그걸로 될 것도 같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낮게 읊듯 노래하던 어느 가수의 안온한 음성을 기억한다. 여기에 한 단어를 더 덧붙여 본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마모되며 사는 것’, 문장을 완성시키고서 온점을 찍는다.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마모되며, 사는 것.

 나는 그 문장을 차근차근 한 덩이씩 마음속에 머금고 따뜻한 온도로 차분히 내려앉은 영귤차를 마신다.


 아, 따뜻하다.



* 얻어터질 땐 보통 보고만 있습디다.

** 건청: 건전한 청년. 줄임말을 너무 좋아해서 풀어쓰지 않고 평소 제 언어 습관을 그대로 반영해 썼습니다.

*** 이 노래는 Shoon이라는 가수의 노래입니다. 노래가 참 안온하고 좋습니다. 한 번쯤 들어보셔도..!


p.s. 이번 글도, 지난 글도, 지지난 글도, 지지지난 글도- 가장 최근 업로드 한 네 개의 글은 태재 작가님과 함께 하고 있는 ‘Essay Drive’와 덕분에 지을 수 있었던 글입니다. 이번 글감은 ‘반쪽’이었는데, 에세이 드라이브 하면서 아마 처음으로 글감을 글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써본 글 같습니다. 글 자체가 제 반쪽, 반려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니 멀리서 보면 글감이 보일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며 썼어요. 이 글을 보신 누군가도 글감을 캐치해주셨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글감에 얽매이지 않고 제가 쓰고자 하는 제 차기작 원고를 잘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랐는데 이번 기수는 성공한 것 같아 뿌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