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셋이 되며 먹는 감정의 서른세 끼
#찜찜함
내가 결혼하기로 했을 때 있었던 몇 안 되는 다행 중 하나는 우리 엄마의 첫 번째 걱정이 나의 안위였다는 것이었다. 몇 안 되는 다행은 쉽사리 잊혔다. 그다음부터 우리 엄마는 줄곧 나를 바라보는 남 걱정만 했으니까.
상견례 전에 어른들을 뵈러 가서 처음 ‘저희 결혼하겠습니다’ 하는 식사 자리에 갈 때 엄마는 나를 몇 번이고 타일렀다. 옷장에서 무슨 옷을 꺼내 입고 가야 할지까지 같이 고민해 줬다. 생계가 걸린 내 취업 면접도 이 정도로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한참 뒤적거리다 제법 단정하면서 너무 싼 값에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플레어 원피스를 찾아내 내 목 언저리에 갖다 대고서야 엄마는 비로소 만족한 미소를 내비쳤다.
인적이 다소 드문 한적한 식당,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이미 가족인 사람들 사이에 비집고 앉아 곧 가족이 될 사람으로 인사를 드렸다. 인생 내내 탁월한 먹성을 자랑해 왔음에도 밥을 먹다가 몇 번이나 체할 뻔했다. 어디 가서 책잡힐 일 하면 안 된다, 네가 잘못 행동하면 엄마 욕 먹이는 거야, 엄마가 하던 말들이 숟가락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맞는 명절을 앞두고는 체기가 머리까지 타고 올라왔다. 한참을 누워서 생각하는 동안 오던 잠도 달아나버렸다. 걱정만 안고 방문했던 게 무색하게도 첫 명절이었던 설에, 나는 시가에서 더 없는 환대를 받았다. 어머님의 어머님은, 그러니까 시시어머님은 어머님 손에 설거짓거리 하나 안 들리게 하셨다고 했다. 너는 앉아만 있어라, 일은 내가 후딱 해치워버리면 그만이다, 가만 앉아있는 것도 자못 불편해 일어나려고 엉덩이를 들썩이기만 하면 어머님은 손사래를 치며 나를 끌어앉히셨다.
친정에선 딱 그 반대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주방에는 온갖 먹을거리를 늘어놓고 잔뜩 뭔가를 주무르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몇 식구 되지도 않는 집에서 무슨 명절을 그렇게 푸지게 챙기겠다는 건지 엄마는 꼭 명절만 되면 명절 푸드 공장장 같이 굴었다. 얘, 너희는 편한 옷 갈아입고 와서 이리 와서 동그랑땡 좀 부쳐라. 잠시 궁둥이 붙일 사이도 없이 잠옷으로 환복한 나와 남편은 옷에 기름내가 밸 때까지 근성 있게 동그랑땡을 부쳤다. 식사 후에 10인분이 조금 안 되는 대단한 설거짓거리를 마저 치워내면서 몸 한구석이 삭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체할 리 없다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다.
아이돌이 되겠다며 백 한 명의 연습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마지막 꼭대기 층의 열 한자리를 두고 다투던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 속에 가장 상징적으로 자리했던 세트는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열 한자리, 그중에서도 특별해 보이는 마지막 한자리를 강조한 세트의 기형적인 피라미드 구조 때문이었다.
상설하추(상반기 설, 하반기 추석) 시즌을 네 차례나 지나 보냈다. 데뷔한 지 꽤 시간이 흐른 중견 며느리가 된 셈이다. 지난주에도 다음 달에도 계속 이어질 며느리들의 데뷔 속에 데뷔 6년 차 중견 며느리는 프로듀스101 속 그 기형적인 피라미드 세트와 며느리들 사이의 기묘한 상관관계에 사로잡힌다.
이를테면 나는 ‘PD 픽’, 즉 시어머니 픽을 당한 행운의 며느리인 셈이다. 연습생 생활은 어머님을 거의 뵌 적도 없이 지나 보냈으니 별거 없었고, 데뷔 이후에도 고난의 신인 생활 같은 건 없었다. AR이 깔린 식사 자리에서 숟가락만 움직여 밥알을 밀어 넣으면 잘 먹는다고 기뻐하시는 어머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어렵지 않았는데, 소속사 사장님은 늘 내게 대중의 눈을 조심하라고 채근했고 나는 그 채근에 데뷔도 전에 이미 너무도 지쳐 있었다. 명절마다 시가에 출연하면 설거지 면제권이 부상으로 따라왔는데 웃는 표정을 짓는 게 힘에 부쳐 부상이 부상인 줄도 잘 몰랐다. 평생 해본 적 없지만 조금만 사근사근하면 단숨에 저 피라미드 꼭대기, 최고의 며느리로 올라설 수 있는데- 어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지, 대체 왜…….
고민해봐야 풀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며느리 6년 차는 민족 대명절 설을 고작 며칠 남기고 의식처럼 물음표들을 게워낸다.
왜 나는 PD 픽을 받았는데 열심히 올라가서 1등하고 싶지가 않지?
나는 욕심이 별로 없는 며느린가?
사랑받는 사위 6년 차가 된 쟤는 왜 별로 안 힘들어 보이지?
그보다… 내가 애초에 데뷔한다고 한 적은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