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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 Mar 20. 2023

연극 <햄릿>

오믈릿? 햄릿!

공연 기록

2022/07/13(수) 19:30

국립극장 해오름

2열

175분(인터미션 20분)

81,000원


햄릿 강필석

유령 전무송

클로디어스 유인촌

거트루드 김성녀

폴로니어스 정동환

레어티즈 박건형

오필리어 박지연

호레이쇼 김수현

로젠크란츠 김명기

길덴스턴 이호철

무덤파기 권성덕

배우1 박정자

배우2 손숙

배우3 윤석화

배우4 손봉숙




기다리고 기다리던 햄릿의 첫공 


첫 공은 절대 봐야 할 것 같은 어떤 의무감에 찾긴 했지만, 첫 공의 짜릿함에 연기 차력쇼에서 오는 무한 감동에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한 마디로 BREATHTAKING 


이게 첫공 수준이라니. 

연기 도합 몇 백 년은 될 것 같은 배우님들의 조합이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나오는 캐릭터 이름만 봐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대작인데,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름을 보면 더욱 압도된다. 캐스팅 보드가 따로 필요 없을 수준의 배우 조합이다.


가히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원작이 갖고 있는 무게감에, 연극만이 주는 그 숨 막힐듯한 긴장감에, 배우들의 노련함과 해석 능력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유머 코드까지 더해져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극이었다.


그냥 툭툭 내뱉는 거 같은데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배우님들을 보고만 있어도 벅차고, 극의 진행을 도와주시는 언더스터디 배우님들까지,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연극의 참 맛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완벽했던 작품이었고, 긴 공연 시간마저 순삭 됐다. 

고전 문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연극을 선호하지 않더라도 꼭 한 번쯤은 보길 추천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햄릿.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에 대비해 냉소적이고 비판하는 성격이 가장 강하고, 고전에서 인용하는 부분이 많아서 원문을 보면 사실 재미가 많이 없다..(?) ㅋㅋㅋ 흐름이 좀 이상한데- 학교 다닐 때 그냥 질려서 봤던 기억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대단한 작품이란 것만은 변함이 없다.


햄릿 줄거리야, 다들 잘 아실 테니 패스-


한국 감성

햄릿은 외국 공연 포함 참 여러 버전으로 봤었지만, 이번 햄릿은 국밥 같은 문화적인 요소나 유행어 등을 넣어 한국 감성을 극에 매우 잘 녹여냈다. 이런 요소들이 가끔 원작이 분위기를 해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이번 대본은 대단했다. 관객의 유머 코드에도 잘 맞았다. 그래서 그런지 셰익스피어 특유의 풍자와 비판이 더 극대화된 느낌까지 받았다.


연출

고전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오페라나 연극과 같은 공연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시대 배경을 '현대'로 설정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몰입을 깨는 설정들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거나, 복장이나 소품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 그런 듯하다. (그래서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볼프강만 찢어진 청바지 입고 나오는 거 불호다.. ㅜ)


하지만 이번 햄릿의 시대 배경은 캐리어(+보스턴백),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소리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21세기인듯하나 진심 배우님들만 눈에 들어온다. 옷이나 그런 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그랬겠거니-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이 풀어가는 것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처음부터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무대

무대가 굉장히 깊다. 진짜 깊다. 

무대 멀지만, 오글을 들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몰입된다. 굳이 얼굴 표정이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그냥 그 무대 자체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배우님들 앞으로 나오면 아주 잘 보인다.


어둑한 무대 자체가 거대한 무덤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불필요한 설정이나 소품이 없이 깨끗하다. 캐릭터의 감정 그 자체로만 끌고 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도구와 구조물만 있다. 

출처: 신시컴퍼니


시야

OP 3개 열 + VIP 1열까지 단차 없으며, 2열부터 시작하는 단차도 거의 없음. 한 5cm..? 

2열부터는 자연재해 발생하면 기웃기웃해야 한다. 아예 뒤로 갈 거 아니라면.. OP 혹은 1열이 나을 듯하다.


BOX석도 추천한다. 일단 양옆에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다. 근데 박스석에 앉을 거면 무대 가까운 쪽에 앉으면 좋을 듯하다. BOX석 위치에 따라 무대 잘려 보이는 건 감안하고서라도 우선 시야가 매----------우 깨끗하다.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오필리어 무덤 안까지 볼 수 있다.


관크

극이 극인 만큼 관크 예상하고 가야 한다. 어셔도 제재를 안 한다... 대놓고 카메라 들고 있는데도 쳐다보지도 않고, 극 중간에 핸드폰 하는 사람도 보고, 마스크 내리는 사람도 보고.. 심지어 객석에서 셀카봉으로 찍는 사람도 봤다. 음악 하나 없이 대사로만 진행되는 거 뻔히 알면서 핸드폰 오살라게 떨어뜨리고.. 아 그리고 뜬금 포인트에서 극장이 울리도록 웃음 터지는 관객은 진짜 뭐지 싶었다. (예: 거투르드가 그냥 햄릿-하고 불렀는데 웃음 터지는 건 뭘까..)



연기

배우님들의 연기는 감히 논할 수조차 없다. 그냥 연기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다 원래 그런 사람인듯한 디테일과 감정 표현이 ... 미쳤다. 원작의 아름다운 문장이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감정과 딕션을 보여주셨다. 


그냥 大배우 파티. 



미쳐가는 자의 역할을 하신 요정 강햄릿필석 님은 정말 햄릿 그 자체였고, 끝도 없이 쏟아내는 에너지에 혼이 다 나갈 지경이었다. 

배 위에서 내뱉는 to be or not to be 독백은 당연하고, 모든 대사, 모든 장면에서 그냥 섬세하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정색했다가 사랑했다가 - 원래 잘하시는 거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이 배우님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가 매우 궁금하다.

그리고 선왕 역할의 전무송 배우님과 실제 부자 사이처럼 너무 닮아 보이는 것도 좋았다.


필석닉은 바로 이전 작품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셰익스피어를 경멸하듯 싫어하던 닉 바텀 역할이었는데 :)

햄릿 보면서 '썸씽로튼'이 참 잘 만든 뮤지컬이라는 걸 또 느꼈다. 썸로에서 들었던 대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넘버가 자동 재생되고 닉 바텀과 윌의 동선까지 생각날 정도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j68Yz_pPm4Y

[더뮤지컬 리딩X햄릿] 연극 '햄릿' 강필석



정동환 배우님, 예전 대심문관 역할하셨을 때 무려 25분간 쉬지 않는 독백을 하셨던 연기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번 폴로니어스와 사제 역할 사이의 변화도 꼼꼼하게 봐야 하는 포인트다. 


폴로니어스일 때는 스스로가 아주 잘난 줄 알고, 태평양 같은 오지랖을 부리며, 논리 있는 듯하나 실속 없는 말과 아둔한 행동을 하는 폴로니어스의 성격에 맞게 걸음걸이, 말투, 억양 모두 간사한 아첨자의 모습을 보이지만, 오필리어의 장례에서 보여주신 사제의 모습은 '정말 똑같은 분이 맞나?'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을 정도다.

https://youtu.be/C4I7NJMxCIY

[더뮤지컬 리딩X햄릿] 연극 '햄릿' 정동환



무려 햄릿 경력직 6번의 유인촌 배우님의 클로디어스. 

겉으로는 조카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인자한 왕의 모습을 보이거나, 사람의 마음을 사고 욕심 많은 왕이지만,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고통 받거나 고민하는 모습에서 클로디어스 자제가 갖는 고뇌와 나름의 힘듦이 매우 설득력 있었다. 찢인촌도 아주 색달랐다 (:

https://www.youtube.com/watch?v=56PT4pJbn2o

[더뮤지컬 리딩X햄릿] 연극 '햄릿' 유인촌

데뷔 12년차이자 연극<햄릿>의 막내 박지연 배우님. 오필리어 하려고 살을 더 빼신 듯한 모습.

아름다운 오필리어 그 자체였다. 사랑스럽고 우아하지만, 아버지의 꼭두각시로 살아가기에 처음부터 어딘가 영혼이 없어 보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을 잃게 된 오필리어의 연기는 미쳤다.. 그 와중에 부르시는 노래는 너무 아름답고 (목소리 황홀) .... 이제 다른 오필리어를 상상할 수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4JmFDYfHrAE



덧. 

월간 객석(1984년 창간 공연∙예술 전문지)에서 배우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이 참 흥미롭다.

https://auditorium.kr/2022/08/%EC%97%B0%EA%B7%B9-%ED%96%84%EB%A6%BF%EC%9D%98-%EB%B0%B0%EC%9A%B0-16%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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