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한 시간, 4분
2022/07/16(토) 14:00
국립정동극장
E열 OP석
110분(인터미션 없음)
70,000원
크뤼거 이소정
제니 한재아
뮈체 이동수
뢰벤/교도소장 조영태
한나 양지원
프랭키 노지연
아이즈 김하연
되르테 안현아
바릭 김병영
피아니스트 김경민
마지막 4분을 위한 110분
일단 극장은... 좋았다. 정동극장은 작기도 하지만, 단차도 좋아서 무대를 보기엔 참 좋은 극장 같다.
1열 정가운데였는데, 양 사이드(교도소장의 방, 크뤼거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기 위해 조금 두리번거렸지만 그래도 역시 센터는 좋다.
극 전체적으로 무대가 많이 높지 않아 목 통증 없이 관람할 수 있다.
극 후반부에(인터 없음) 바로 앞으로 배우님들이 후다다닥 지나가는 동선이 있다. 어쩐지 어셔들이 발 앞에 가방 두지 말라고 그랬구나. 코트 펄럭임 당할 수 있어서 좋다.
무대 가운데 큰 피아노가 있다. 진짜 the last 4 minutes를 제외하고 무대 가운데의 피아노를 실제로 치진 않는다. 무대 위쪽 공간에서 피아니스트가 연주한다. 그런데 건반을 누르지 않고 치는 척하기가 팔에 힘도 많이 들어가고 많이 어려운 일인텐데.. 건반이 안 눌리도록 설계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잘하셔서 놀랐다.
무겁고 어두운 극이나 휘몰아치는 전개에 정신이 없어서 생각보다 에너지 소비는 크지 않았다(이해하기 바빴다). 내용을 알고 등장인물의 심리 따라가다 보면 에너지가 팍팍 소모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크뤼거(Krüger)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60년째 루카우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는 가르치는 할머니다. 그러다 살인죄로 복역 중인 18세 제니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수업에 들어오라고 말한다.
제니의 첫 수업 날, 낡은 피아노 한 대만 있는 허름한 공간에서 제니는 자신을 괴롭히는 다른 재소자들과 시비에 휘말리고, 교도관 뮈체를 폭행한다. 이 사건으로 제니는 독방으로 옮겨진다.
교도관 뮈체는 크뤼거의 피아노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이다. 뮈체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크뤼거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심지어 피아노도 기부한다.) 크뤼거는 뮈체에게 피아노는 치는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며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재능을 가진 제니에게는 청소년 콩쿠르를 제안한다.
크뤼거는 2차 세계 대전에서 간호사였다. 동성애자였으며, 연인 한나에게 피아노를 배운다. 한나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지만, 결국엔 전쟁에서 죽는다. 크뤼거는 한나를 죽게 한 것에 죄책감이 있으며, 그 재능을 그렇게 놓쳐 버린 것이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듯하다.
크뤼거와 제니는 콩쿠르에 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방해가 만만치 않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제니는 크뤼거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크뤼거는 제니를 통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다.
결국엔 제니는 콩쿠르 결승까지 나가며, 그녀의 마지막 연주 4분은.. 숨 한 번 내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이 연주만큼은 피아니스트가 아닌 실제 배우가 연주한다.
제니가 연주하는 음악은 불협화음 같으나 그 사이에 존재하는 조화와 소통이 함께 느껴져서 좋았다.
극은 제니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명확한 결론 없이 끝난다.
이렇게 끝나버려 사람들이 박수치는(기립하는) 타이밍을 놓치기에 너무나 좋다 ㅋㅋㅋㅋ
각 캐릭터의 사연과 연관성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혹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점들이 많은 거 같다. 그렇게 친절하거나 빈틈없이 짜인 극은 아닌 듯한 느낌을 지울 순 없어 아쉬웠다.
예를 들어,
뮈체의 배경은 무엇일까, 뮈체는 왜 그렇게 크뤼거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나
한나와 크뤼거는 그래서 연인이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재능과 피아노와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크뤼거는 제니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아빠는 왜 갑자기 나오는가
제니 아기는 또 갑자기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연출에서 스토리의 흐름이 깨진 적이 있기도 했어서, 일부 배우님들의 연기가 나에겐 와닿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듀오백 PPL인듯한 설정은 진짜인지 드립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뜬금없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결론은!
두 번은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 같다. 하지만 시청까지 너무 멀어………
정동극장에서 제작한 창작 뮤지컬 <포미니츠>는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2007년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수갑을 찬 여성 죄수가 맨발로 피아노 건반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인 포스터다.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영화도 모든 심리를 이해하려면 두 번 보면 좋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영화도 그런데, 하물며 뮤지컬을 오죽했을까-
덧. 시작하자마자 목매단 시체 떨어져서 움찔했다. 그래도 이후로 놀라게 하는 건 없다.
덧2. 캐보에 제니 사진 너무 무섭다. 심령사진인 줄..
덧3. 후기는 비록 이렇게 썼지만 사실 울다 나옴...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