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누군가 찾아왔다
2022/09/05(월) 20:00
예그린씨어터
A구역 1열
100분(인터미션 없음)
31,000(프로텍션 할인)
비지터 박유덕
맨 선한국
우먼 주다온
퍼커션 박선영
바이올린 허유진
기타 강대운
콘트라베이스 황지성
피아노 박지훈
스탈린의 독재 정권 치하,
사람들이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지는 공포의 시대.
1937년 12월 31일 자정이 되기 얼마 전,
비지터가 행복에 젖어 있는 부부의 집으로 찾아온다.
비지터는 스스로를 엔카베데라고 소개하고,
맨과 우먼이 가지고 있던 치욕스러운 비밀을 하나씩 드러내며
두려움과 경멸에 떨게 만든다.
그리고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넘버 좋고 연기는 더 좋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생각이 들게 한 혼란스러운 극이었다.
비지터는 누구인가?
액터 뮤지션은 또 누구인가?
비지터는 왜 그들을 찾아갔을까?
맨은 왜 자살했을까?
우먼이 탬버린을 들고 연주하는 건 뭘까?
마지막 12번의 종소리는 뭘까?
중반까지만 해도 답답하던 우먼의 심경 변화도 매우 흥미롭고
그에 따라 변하던 눈빛- 마지막에 탬버린을 들고 연주하던 자신을 자각했을 때의 표정까지.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진 맨을 몰아가며 양심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비밀이 밝혀지니 맨보다 더 무섭게 변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 중에 가장 악하게 느껴졌던 우먼.
그래서 비지터에게 영혼을 뺏긴 게 아닐까.
맨의 연기는 우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예상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먼과 맨은 다른 방향의 심경 변화를 보여줬다.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을 넘겼는데, 자신이 그리던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음에 좌절하며 순간적으로 회의감에 빠져 절망하는 연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마지막 비밀 듣는 것을 거부한 것도, 그래도 끝까지 놓지 못했던 자신의 유토피아의 한 조각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했다.
비지터.
덕지터의 연기가 일단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영혼이 1도 없고 장난기 넘치는 장꾸 같다가도 무섭게 돌변해서 몰아가고. 맨과 우먼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카리스마와 포스가 엄청나서 등장 자체만으로 그 위압감이 엄청났다.
극 중 비지터의 말처럼 "동물도, 식물도, 무생물도 아닌 존재"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처음엔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극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존재가 맨/우먼의 양심인지, 진짜 악마인 건지 뭔지 도대체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비지터의 손아귀에 넘어가 탬버린을 치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보기 시작한 우먼을 생각하면,
양심인 걸까..?
진짜 인간의 저 밑바닥을 다 드러낸 그런 인간이 되어 앞으로도 양심을 저버린 삶을 살게 만드는..?
작품 이름에도 있듯이 제일 중요한 플레이어 배우님들.
변호사 부부, 죄수, NKVD, 수건걸이 등을 연기하시면서 악기 연주까지!
악기 들고 동선 맞추고 움직이면서 연주하시고 찐주인공.
특히 표정을 봐줘야 한다.
맨과 우먼의 이야기에 맞춰 연기하다가도 무대를 벗어나면 바로 표정이 싹 바뀜.
맨과 우먼을 바라보는 눈빛이 진짜 소름 끼친다.
그들이 정말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데, 서로에게 내뱉는 거짓말을 간파한 눈빛으로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무겁고 무서운 분위기지만,
공포스러운 연출도 없고 놀라게 하는 부분도 없어서
배우님들이 이끄는 대로 마음을 비우고
그때그때의 감정을 느끼면 좋을 것 같다.
덧.
비가 너어무 많이 와서 사진 찍을 곳이 하나도 없었...ㅠㅠ
제작사 인스타에서 가져온 캐보가 상당히 맘이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