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연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 Apr 30. 2023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공연 기록

2022/09/12(월) 18:00

유니플렉스

12열

120분(인터미션 없음)

61,600원(프리뷰 할인)


차이코프스키 김경수

안나 김소향

세자르 임병근

알료사 김지온

오네긴 송상훈

타치아나 조은진

클라라 곽나윤

프리츠 홍기범





[좋았던 점]

1. 배우

2. 배우

3. 배우



극을 이해하고 싶어 많은 자료를 찾아봤다.


아래는 부족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사견이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우님들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지 않나-라는 느낌이다. 연기로 극복할 수 없다면 연출부에서 다시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대감+100이었던 극이었는데, 0이 되어 버려 너무 안타깝고 화날 지경이었다.


'불호 판단은 자둘에서'가 나만의 원칙이라 거의 모든 작품을 2번 이상 보나, 에너지 소비가 상당했기에 자둘을 언제 하게 될지 기약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렇다 보니 인터미션 없이 2시간을 버티고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배우님들이 눈에 들어와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이 무척 죄송스러웠다. 스토리가 너무 뚝뚝 끊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스스로 전문가도 아니고 누굴 평가할 만큼의 지식도 없는지라 웬만하면 불호 후기 잘 안 남기는 편이나, 그럼에도 길고 긴 불호 후기 주의!




1. 인물 관계성 부족


❝ 힘든 현실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푸시킨의 시처럼,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극 중 인물들을 통해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에게 억압을 받으면서 음악적 소신을 지켰던 차이콥과 자신의 이념을 시로 표현하고자 했던 안나. 그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서 제목이 <안나, 차이코프스키> 였을까..? (안나와 차이콥은 동시대 인물이 아님. 영향은 받았을 수 있지만 만난 적이 없음- 완벽 허구)


여기에 또 다른 신념을 지키며 차이콥을 압박하는 세자르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거기에 허구를 잔뜩 입힌 알료사(Aleksey Sofronov)도 등장한다. (차이콥보다 19살 어렸던 알료사는 차이콥 집안의 오래된 하인으로, 1871년에 그를 처음 만났으며 육체적 관계도 가졌지만 결국엔 차이콥이 사망하는 1893년까지 그의 곁에서 소중한 인물로 남게 된다. 차이콥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도 했고, 차이콥은 알료샤 아이의 대부代父도 된다.)


각 인물의 서사도, 전개도 이상하다. 관계성도 비어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는 느낌이다.


매우 중요한 인물로 그려지는 알료사는 95%가 전반부에만 나오며, 전반부 후에 죽는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꿈이나 허상으로만 나온다. 


후반부에서는 안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우 해석에 따라 다른 건지 모르겠지만, 조력자나 친구 이상의 의미인 건지도 모호하다. 안나가 차이콥의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차이콥이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를 위로한다는데, 너무 급발전된 감정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그리고 안나가 강요하듯 그의 마음을 캐묻는 부분도 뭔가 어색했다.


또한 차이콥은 오네긴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가 오네긴에게 이입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오네긴(푸쉬킨이 7년 동안 집필한 5500행짜리 운문서사시)의 내용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푸쉬킨도, 그의 아내도 문란한 소문으로 가득했으나 극 중에서 푸쉬킨의 말년은 되려 아름답게 그려진 것 같다. 그래서 푸쉬킨에 자신을 대입하는 차이콥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서사다.



2. 극을 관통하는 주제의 불명확성


제목부터 이해가 잘 안 간다. 극 중 안나는 차이콥의 음악을 다시 이끌어 내는 데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얄료샤을 위한 곡을 같이 쓰는 과정에서다.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얄료사와 친구들'이나 '차이콥스키의 사랑' 정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로 안나의 비중, 역할, 감정이 모호하다.


세자르는 평론가로 활동하며 전쟁 중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곡을 만들라고 강요하며, 음악 자체보다는 의무나 책임에 더 중점을 둔 듯했다. 나중엔 또 서로를 이해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극 중에 둘의 연관성은.. 모르겠다.


극 중 알료사는 세상을 떠나 둘만의 음악 안에서 자유롭게 살자고 얘기한다. 단순 뮤즈였던 걸까..?


그래서.. 이 극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음악으로 대통합

자신의 신념을 지키자

전쟁의 아픔과 갈등

숨겨야 하는 사랑

다양한 사랑에 대한 응원


관객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내용에 공감을 못하고 메시지를 캐치하지 못하니,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했다.


또 온갖 좋은 말은 다 넣었는데, 연관성도 찾지 못했다. 어느 포인트에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3. 넘버

차이콥의 음악에 얹은 넘버도 많아 차이콥의 음악을 알고 가면 더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일단 전체적으로 넘버들이 모두 높고 (감정적으로) 세다. 잔잔한 넘버도 물론 있지만, 가창력으로 극의 부족함을 커버하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렇게까지 격해져야 하나 싶은 것도 있었다.




포스터만 보고는 음악적인 이야기와 동반자를 얘기하려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의 음악 이야기보다는 자극적인 한 꼭지를 가져와, 이것저것 붙인 느낌이 크다.


인터미션 없이 갈 수 있는 최대 길이를 뽑았는데, 관계를 설명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120분은 너무 짧았던 걸까. 

내용을 더 줄일 수도 없고 더 넣을 수도 없어- 딱 중간에 끼인 애매한 대본과 연출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그걸 연결하는 개연성이 모자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덧.

차이콥스키만 성(姓)을 부르는 것도 깨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예의를 갖출 때는 성을 부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다들 이름을 부르는데, '차이콥스키 선생님' 이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이름처럼 부른다.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차이콥스키가 맞는 표현)

매거진의 이전글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