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그 주변 어디라면 견딜게
2022/06/14(화) 20:00
광림아트센터 BBCH홀
K열
140분(인터미션 15분)
55,000원(해븐마니아데이)
다이애나 최정원
댄 이건명
게이브 양희준
나탈리 이아진
헨리 최재웅
의사 윤석원
자아! 놀아보자 붸이붸에에에에
<넥스트 투 노멀>은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인데, 그해 토니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여우주연상, 최고음악상, 최고 오케스트레이션 상을 수상했고,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퓰리처상 100년 역사 동안 그중 수상한 뮤지컬은 넥스트 투 노멀을 포함해 단 아홉 편.
호불호가 강한 뮤지컬이지만 작품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인 것 같다.
바로 앞자리에 사람 없어서 시방 없이 완벽한 시야였고,
꿀 눈높이로 무대 전체 보기엔 최고였지만, 표정 보려면 오글이 필요한 거리였다.
음향은 듣던 대로 정말 별로였다. 치킨홀에 공연 보러 다니면서 역대급 별로였다. 세션 소리가 배우님 목소리를 먹고, 목소리가 퍼지지도 않고… :(
하지만 <인사이드아웃>의 슬픔이처럼 슬픔은 정상이며, 아픔과 고통 역시 항상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던 너무 따뜻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극이었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갔기에,
섹드립과 마약, 욕설이 잔뜩 나오고, 파이프나 후카(hookah) 비스무리한 기구의 등장에 수시로 놀랐다.
그 와중에 미국 생활 생각나게 하는 미국집 스타일은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유행에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촌스러운 옷차림도 완전 현실 고증이라 웃기면서도 스스로 창피해지는 기분이 들었..(:
그런데.. (물론 이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지만) 번역된 대사와 가사가 심하게 어색하다고 느꼈다.
나중에 브로드웨이 가면 원어로 다시 듣고 싶을 정도로 적응이 어려웠다.
전혀 그렇지 않은 가사였고 상황임에도 종종 멜로디가 갑자기 빨라지고 신나질 때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에서 장면이 뚝뚝 끊기고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내용이라, 이런 넘버가 없다면 땅굴 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극을 보기 전엔 넥스트 투 노멀이 무슨 뜻일까 와닿지 않았는데, 다이애나와 나탈리가 함께 부르는 마지막 넘버 Maybe를 들으면 단번에 이해가 가는 제목이다.
평범하지 않은 개인이 모여 평범한 일상을 바라지만, 꼭 평범하지 않더라도 그 근처라면 그게 어디라도 견뎌보겠다는 - 서로가 서로에게 good man, 좋은 가족이 되고 싶어 했던 굿맨 패밀리였다.
[Just Another Day]
어떻게 해서든 아내를 지지하고 '약속'(눈물 포인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댄의 모습이 잘 그려지는 넘버다. 다이애나를 놓을 수 없어 그녀의 뒤에서 20년간 묵묵히 지켜왔던 그의 서사가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말해준다. 이런 모습이 제일 먼저 그려지니, 2막에서 댄이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Who's Crazy/ My Psychopharmacologist and I]
다이애나의 주치의인 파인(Fine) 박사는 이름과는 다르게- 다이애나에게 엄청난 약을 처방한다. 다이애나는 온갖 환상을 겪는데도 “환자 상태, 안정”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환자를 정상(fine) 범주에 넣으려는데 급급해 보였다.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
아들을 잊지 못하는 엄마, 엄마를 챙겨야만 하는 아빠 사이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는 딸 나탈리는 헨리를 만난 후 ㅅㅂ다ㅈㄲ의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아빠가 나탈리에게 "엄마를 챙겨야지, 엄마가 아프잖아, 네가 이해해야지"라는 말을 하는데, 고작 16살 딸에게는 엄청난 상처였을 것.
[Open Your Eyes]
댄은 오픈 대화방까지 참여해서 좋은 의사를 추천받아 올만큼 헌식적이다.
댄이 다른 직원에게 추천을 받아 새로운 주치의가 된 매든(Madden) 박사.
다이애나가 환각 증상으로 이 매든 박사와 로맨스를 즐기고 있다고 상상하는 장면은 진짜 몇 안 되는 웃음 포인트인데, 석원 배우님이 진심 너무 잘해서 온 극장이 다 터지고 정원 배우님도 본의 아니게 웃참 챌린지 :D
[Dreamed A Dance / There's A World]
8개월에 죽은 아들이 쑥쑥 자라 듬직한 18살이 된 아들과 함께 상상 속에서 춤을 추다가 스스로 자해하는 다이애나. 사실 이때 게이브가 다이애나에게 자살하도록 유혹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다이애나는 목숨은 건지지만, 매든 박사는 댄에게
"우울증 환자는 다시 힘이 생기면 또 자살할 거라고 병원에 입원시켜 전기 충격 요법을 시키자"며 댄에게 이상한 치료를 강요(?)한다.
다이애나 스스로도 치료를 거부하고 나탈리도 반대하지만- 댄의 설득으로 결국 전기 충격을 받는데, 이때 댄이랑 부르는 넘버가 오열각...
불안하고 또 불안하지만 가족을 위해 미래를 위해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참 안타깝다.
[Better Than Before]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그대로지만 모-든 기억을 잃은 다이애나를 보며 댄은 오히려 잘 된 거라며, 새로운 기억을 만들면 된다면서 예전의 덜(?) 좋았던 기억마저 아름답게 바꾸려고 한다. 거짓 기억을 심어주는 댄과 나탈리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게이브의 이야기는 아예 생략해 버린 채, 과거를 바꾸면서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How Could I Ever Forget?]
눈물이 서서히 말라가는 이때부터 또 눈물이 차오른다. 아기 게이브의 오르골을 다이애나가 발견하면서, 댄과 싸우는데.. 일단 연기가 미쳤다.
다이애나가 무너지는 모습을 평생 보고 살았던 댄은 게이브의 존재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하며 오르골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하지만, 다이애나는 오르골(게이브의 존재)이 자신이 겪는 이 미친 병의 원인이 됨을 깨닫는다.
[Maybe (Next to Normal)]
다이애나는 피하기만 해서는 남은 가족들에게 더 큰 아픔만 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통을 마주하기로 한다. 나탈리에게 같이 병원을 다녀오자고 제안하고, 병원을 다녀온 후 나탈리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고백하는데... 엄마도 슬프고 딸도 슬프고 하쒸
댄-다이애나와 헨리-나탈리의 대사가 의도적으로 오버랩되는데, 헨리는 나탈리에게 "네가 미친다면 같이 미쳐주며 완벽한 짝이 되겠다"라고 말한다.
댄은 다이애나가 쓰러지지 않도록(또는 고통을 마주하지 않도록) 항상 일으켜줬다면, 다이애나에게는 그것보다 함께 고통을 마주해 주는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So Anyway]
다이애나가 댄의 손을 놓고, 댄도 붙잡던 손을 놓고 각자 스스로 서기로 결심하는 장면인데- 댄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저 붉어진 눈으로 떠나는 다이애나를 바라만 본다. 눈빛 연기가 끝장나는 장면이며, 댄을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이 참 다르다.
그리고 다이애나가 떠난 후, 게이브가 나타나 댄을 붙잡는다.
지금까지 게이브는 다이애나 눈에만 보이는, 다이애나 상상 속에만 살아있는 그런 존재라고 보였다. 하지만, 극 시작 이후 처음으로 댄이 게이브를 보며 "가브리엘… 내 아들…"하고 부른다. 댄도 게이브의 환상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본인도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 본인의 상처는 덮어두고 다이애나만 고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Light]
다이애나가 떠난 후, 나탈리가 불이 꺼진 집으로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둘이서 잘 해내자"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굿맨 패밀리에 빛이 비치는 듯해, 마지막 넘버의 제목이 '빛'인 것도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