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정명훈, 임윤찬!
2023/11/29(수) 19:30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층 H열
100분 (인터미션 20분)
40,000원
지휘 정명훈
피아노 임윤찬
연주 뮌헨필하모닉
작년 롯콘홀 정명훈 X 임윤찬 콘(후기) 이후 13개월 만에 만나는 조합.
가격 상관없이, 자리 상관없이 어디든 입장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 정명훈 X 임윤찬 공연이 4만 원이라니. '하나님 석'이라 불리는 세종 3층이라 가능했던 티켓 값인 것 같다. 3층 제일 뒷자리도 12만 원이었던 작년 롯콘홀 공연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했다. 이런 퀄리티에 4만 원…
프로그램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4번 사장조, 작품번호 58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4 in G major, Op. 58
베토벤 - 교향곡 제3번 내림마장조, 작품번호 55 ‘영웅’
Beethoven - 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Op. 55 “Eroica”
(앵콜)
Liszt - Nocturne No. 3 "Liebestraum" (사랑의 꿈)
아리랑
개인적으로는 작년 레퍼토리가 더 좋았지만, 소리는 세종이 훨씬 좋았다. 약하게(piano) 연주하고 있는데도 소리가 굉장히 또렷하게 들렸다. 세종 3층의 재발견이다.
좋은 곡이 능력자를 만나니, 이런 감동이 있는가 보다. 가벼운데 무겁고, 부드러운데 거칠다. 이 불가능한 것을 하는 임윤찬의 손끝은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꾸밈없는 그의 모습에 저항 없이 웃음이 터졌다. 꾸벅꾸벅 인사 2번 하고 퇴장, 열 세고 다시 나와서 인사 두 번하고 또 퇴장. '커튼콜 때는 이렇게 해야 해'라고 누가 말해 준 것인지, 말 참 잘 듣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 보여서 그냥 귀여웠다. 이런 우주대스타의 귀여움..
앵콜 시작할 때도 긴장한 모습이 없고, 시작하겠다는 사인도 없이 그냥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연주하는 모습이 순수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런 노래 알아?’ 라며 연주를 시작하듯 꾸밈없이 연주하는 모습이라 더욱 좋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가 연주하는 피협 4번을 듣고 있자니, 지금 읽고 있는 책 <월든>이 생각났다. 뭔가 ‘순리’, ‘자연스러움’, ‘어긋나지 않음’ .. 이런 감정이었다. 안 좋은 일도 인생의 일부분이듯이, 결국엔 그 모든 것이 순리처럼 일어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 흐름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모든 악장에서 주인공의 환희, 고뇌, 열망, 슬픔이 느껴졌다. 피아노가 연주하는 멜로디가 주인공의 삶/감정이고, 오케스트라가 치고 빠지는 모든 음악이 주인공을 향해 쉴 새 없이 얘기하는 어떤 ‘기운’ 혹은 ‘신’과 같았다. 예를 들면, 2악장에서는 죽어가는 주인공이 있고 그를 위협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오케는 악령(?) 같았다고 할까나……
1부 앵콜곡인 '사랑의 꿈'도 너무 좋았는데, 2부 앵콜 아리랑은 정말 최고였다.
팀파니로 웅장하게 문을 연 후 우리의 가락이 아름답게 편곡되어 흘러나왔다. 플루트와 트럼펫 독주 부분이 있었는데,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선 후 서서 연주하시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아리랑은 언제 들어도 참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연주가 다 끝나고 오케스트라 각 파트별로 인사할 때, 단원들이 인사하자 정명훈 지휘자 역시 허리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하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