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주에 한 번 글쓰기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쉽게 이번 주를 넘겨볼 얄팍한 생각으로 핸드폰 메모장을 뒤적거렸다. 268개의 메모. 핸드폰을 바꿀 때도 메모만큼은 반드시 옮겨달라고 직원을 보채던 기록들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글로 쓸만한 재미난 거리를 찾다가 어느새 첫 메모부터 찬찬히 읽고 있었다.
순간 떠오른 감정들과 대부분의 조소와 슬픔. 중간중간 끼어있는 러브 레터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붕 떠있는 것만 같다. 영화나 책을 보고 기록을 남긴 것들도 꽤나 있었다. 메모장에 있는 최초의 독서록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예술혼과 삶에 대해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한다고 했는데, 한심한 문장력 때문인지 책 뒤편의 소개를 훑고 나서 써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싶다. 아마 표피만 혓바닥으로 훑었을 터.
그 뒤로 독서록은 이어졌다. 핸드폰 메모장과 책의 끝 장 여기저기에 난무하게 됐는데, 최근에 기억에 남는 독서록은 알랭 로브 그리예의 질투. 묘사만 길게 이어지는 작품이 이해가 잘 안됐는지, ‘문학이 이미지에 패배한 지점으로 구태여 독자를 끌고 간다.’고 그럴듯하게 써놓았다. 그런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 책을 끝내지 못했다. 참 우습고 꼴사납게 완독하지 못한 섭섭한 끈기와 문해력을 감추기 위한 자기 위로였다. 부끄러웠다.
그 뒤로도 독서록이나 여러 기록들은 다양해지고, 나름대로 어휘도 풍부해졌다. 대부분은 책을 읽으며 표시해 둔 좋은 표현들을 변형하거나, 모방한 것들이었다. 나보다 나은 이들의 글을 삽시간에 내 것으로 만들어 놓으니 나만 볼 수 있는 기록이지만 성장한 것만 같아 심심치 않게 재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책을 읽을수록 어휘만 느는 게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들도 넓어졌다. 읽는 만큼, 쓸 수 있는 만큼, 보이는 만큼 느꼈다. 아니, 그것들 중에서 기억나는 것만큼 느꼈다.
황석영의 ‘탑’에서 월남전에 파견된 군인인 ‘나’는 ‘간혹 여자를 살 수도 있었’는데 농촌의 피난민 부녀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캄캄한 판잣집의 어둠 속, 대나무로 엮은 침대 위에서 퍼덕이는 갈색의 작은 살덩이는 내 몸처럼 슬펐다.’고 말했다. 나는 내 몸처럼 슬플 수 있게 된 것이다. 캄캄한 판잣집에서 피난민의 부녀자를 사 퍼덕이는 슬픔을 보고 느꼈고 곱씹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이다.
그 뒤로 내 슬픔은 넓어졌고, 입자가 작아졌으며, 이제는 온갖 것에서 슬픔을 찾아내느라 눈과 귀가 바빠졌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준은 못 된다. 부끄러웠다.
마지막으로 메모장에는 이런 멋 낸 언어들 말고, 가장 깊숙한 나의 슬픔이 있다. 그건 넓어지지도, 입자가 작아지지도 않고 그저 고여있다. 처음에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솔직하고 가감 없이 써보자고 다짐했고 설렜다. 그래서 0과 1이라는 숫자 뒤에 숨었다. 솔직해지기 위해. 그리고 난 여전히 메모장에서 멋들어진 언어들을 찾고 있었다. 참 어려운 일이다.
이센스의 에넥도트를 잊고 있다가 버스에서 오랜만에 들었다. 그의 솔직함이 처음엔 두려웠다가 나중엔 존경스러웠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삶의 구김살들을 예쁘게 펴내려고도 하지 않고, 이게 나라며 담담히 늘어놓은 가사가 좋았다. 욕심은 변덕스럽다. 그리고 질투는 욕심을 따라간다. 익명에 숨어 괜찮은 메모나 뒤적거리다가 문득 그가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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