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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GORITHM

화제작 DP를 봤다. 매우 자극적인 소재로 인물들의 상황에 몰입하게끔 하는 잘 짜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마음 한켠에서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떠오른다: "진짜 이렇다고?" 극 중 군대는 쳐맞는 것이 일상이며 문제가 발생하면 숨기기에 급급한 악의 집단으로 묘사되곤 한다. 다소 공감하기 힘든 것이 필자가 경험한 군대는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곳도 아니었다. 아니 사실 대한민국 평균 이상으로 편한 군대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왜냐, 사회에서 군대 취급도 잘 안 해주는, 지금은 폐지 수순을 밟은 의무경찰(AP) 출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20대 남성이 주가 되는 술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다. 군 생활이 그리 고생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삼구포차에서 떵떵거릴 수 있다는 점이 고된 군 생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혹자는 "남자는 군대에서 어른스러워진다"라는 말을 늘어놓곤 했는데, '그 나이에는 굳이 군대가 아니어도 어차피 성장하지 않나?'하고 최대한 편한 군 생활을 바랐다. 그러던 중 일주일에 한 번 외출을 나갈 수 있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조건의 의무경찰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는 흔한 경우는 아니었는데, 훈련소 동기 중 의경 지원만 20번을 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가 첫 번째에 붙었다면 전역을 하고도 남았을 터.


아무튼 4주간의 훈련소 생활, 3주간의 신병 교육대 생활을 거쳐 당도한 소대 생활은 생각과는 아주 달랐다. 기대했던 것보다 배정된 꿀의 할당량이 적은 탓이었다. 이경부터 수경까지 거의 3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한 소대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내가 그리던 생활보다 훨씬 '군대스러운' 광경에 가까웠다. 그리고 대부분이 남성이 경험했듯 온갖 인간 군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이들은 그동안 대체 어디 숨어있다가 하필 우리 소대에 나타나는 것인가. 당시 맞선임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꿀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며 신나서 설명하곤 했다. 일이 힘들면 주변 사람이 좋고, 일이 편하면 사람이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는 식의 이론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름 인생을 관통하는 진리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이경 시절부터 온갖 부침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 공간은 삼구포차가 아니기 때문에 패스.


그럼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배꼽 떨어지게 웃긴 에피소드나 나를 힘들게 한 선임 보다는, 자주 시켜먹은 야식 메뉴나 근무에 나가기 전 들었던 음악 따위가 몇 곱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당시 중대 최고 인기 메뉴는 '피자 탕수육(이하 피탕)'이었는데, 치킨 위에 피자, 토마토 소스 등을 버무려 먹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음식이다. 치킨이면서 왜 탕수육으로 이름을 붙이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피탕을 처음 먹는 날이 잊히지가 않는데,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당시에는 신입이 들어온 날 맞선임들이 야식을 사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빡빡머리를 한 채로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 눈치만 보느라 말 그대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당 감정까지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에 포함되었으며, 그래서 피탕은 두 번째부터가 진짜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시즌 2호 피탕부터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치킨과 치즈 및 소스의 조합은 눈시울이 절로 붉어지게 짜릿했으며, 느끼함을 콜라로 잡은 뒤 배출하는 트림마저 황홀했다. 어찌하여 이 걸작이 더욱 알려지지 않는 것인지 의문만 쌓여갔다. 다만 전역 후에 먹은 피탕은 그 정도로 맛있지는 않았다.


피자 탕수육


그리고 필자의 군 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앨범을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재지팩트의 'Waves Like'라고 답할 수 있다. 당시 소대에는 공용 PC가 있었고, 그것은 콘텐츠 저장소로 기능하곤 했다. 군 생활 초기에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PMP를 통해 영상물을 보거나 음악을 감상하곤 했는데, 뭘 좀 아는 듯한 한 선임이 김심야와 손대현의 'Moonshine'과 재지팩트의 'Waves Like' 등 당시 화제였던 힙합 앨범들을 소대 컴퓨터에 들여온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출 및 외박 시에 개인적으로 파일을 USB에 담아와야 했고, 당시 수경이었던 그가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한 것은 어쩌면 그가 진정 소대원들을 아꼈으며, 웰메이드 앨범을 그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의 은총 덕분에 'N월 N주차 멜론 탑 100'에서 벗어난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Waves Like는 필자의 취향을 정확히 관통하여 일과 전반의 시작과 끝을 빈지노의 목소리로 장식하게 만들었다. "목적지는 Next level, 넘었던 산을 또 넘는 게 삶이면 지킬게 그 제도에 맞게", "과거의 기억은 편하고 쉬운거인데도 늘 내가 끌린 건 내 앞의 어려운 매력이야"와 같은 가사들은 반복되는 나날에서 피가 끓게 했으며, 나중에 짬이 차고 나서는 초소에서 가사를 적고 이어폰으로 녹음하여 사운드 클라우드에 곡을 올리기도 했다.



어쨌든 나의 군 생활은 매우 길고 지루했지만 소소하게 찬란한 기억들도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냥 DP를 보면서 군대는 왜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사람들은 왜 자신의 군 생활이 더 힘들었는지로 입씨름을 벌이게 됐을까를 생각하며 아쉬울 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끌려가는 군대가 왜 당연히 힘들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이 군대에서 얼마나 편하고 의미 있는 생활을 했는지를 뽐내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은 그저 허황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DP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 터무니없다고 느껴지다가도 그런 극단적인 묘사를 통해 세상이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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