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뻔뻔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많은 자기혐오와 연민을 마주해야 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얼굴을 보면 그렇다. 누르스름한 주름이 물의 파동처럼 광대로부터 귀에 이르기까지 잔잔히 퍼져나간다. 그 살의 틈에 얼마나 많은 비애와 자격지심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거울 속 비루한 내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평생을 아버지를 미워하던 주인공은 아버지 죽이기를 단념하고, 부자관계를 단절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를 죽일 생각까지 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아마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봤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난 아버지께 많이 혼났다. 어릴 적엔 머리를 쥐어 박히기를 수십 번. 정수리에 얹힌 주먹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난 그래서 나를 달래주는 엄마를 훨씬 사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렵지 않게 친구들의 주먹다짐을 목도할 수 있었다. 피가 끓어오르던 시기. 주먹을 내지르기도 쉬웠고, 화해도 쉬웠다. 친구들의 성장은 빨랐고, 나는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다. 그 무렵 나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2차 성징이 시작될 기미도 보이지 않던 때, 난 집에만 오면 혈기를 부렸다. 질풍노도의 감정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작았고, 내 목소리는 미성이었으며 한두 살 후배들에게도 귀엽단 이야기를 칭찬처럼 듣곤 했다.
착각은 이런 것이었다. 부모님께 혼나고 나면 나는 분에 이기지 못해 옷장을 주먹으로 쳤는데, 20년도 넘은 나무 문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나는 다음날 통 깁스 신세를 져야 했다.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강해졌음을 과시하려 했던 시도였으나,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럴수록 나를 더 엄하게 대하셨고, 성장이 더뎠던 나의 대거리는 말로나 행동으로나 늘 완벽히 제압되었다.
난 그래서 아버지를 자주 미워했다. 그리고 나는 17살부터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도 그럴듯한 내 방은 없는. 잠깐 들렀다 가는 손님 내지는 이방인 신세가 된 것이다. 달에 한 번, 군복무할 때는 세 달에 한 번 집에 가기도 했다. 나의 성장기는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졌고, 아버지와 다툴 일이 사라져 버린 나는 그제야 아버지가 늙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내게 소리치지 않았다. 호르몬 때문인지 그가 눈물 흘리는 일도 잦아졌다. 문득 그가 안쓰러워졌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몇 년 간 모신 엄마는 50도 되기 전부터 치매 걱정을 했다. 그리고 잊기 싫다며 네이버 밴드에 온갖 사진을 닥치는 대로 올렸다. 나는 몇 년을 안 들어가보다가, 2년 전 즘에 처음으로 들어가 봤는데, 또래보다 작고 마른 교련복을 입은 아버지를 봤다. 폼은 잡고 있었지만 장난기 서린 눈빛과, 왜소한 체격 뒤에 숨겨진 자존심이 뚜렷했다. 그날로 아버지가 좋아졌다.
아버지에게서 나를 봤다. 늘 사람들은 내게서 아버지를 찾았는데. 우리가 많이 싸우던 무렵, 아버지는 아버지를 혼내야 했고, 나는 나와 다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아버지를 회상했다. 그리고 어느 흐릿한 밤에 또 다른 나의 가슴 한가운데 알 수 없는 회한이 대롱거리며 축 늘어져 있는 걸 떠올리며, 나는 누인 몸을 일으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시라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