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무언가에 관심이 생겼을 때 우연히 그것을 마주치는 빈도가 잦아진 경험이 있는가?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누군가가 이전보다 길거리에 고양이가 더 많아진 듯한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주변에 고양이가 많이 나타난 것일까? 그럴 리가, 고양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귀여움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며, 무의식적으로 고양이가 더 많이 나타나는 골목을 찾아 지나가게 됐을 것이다. 혹여 그가 고양이를 진정으로 아껴 밥이나 간식을 제공하는 능동적인 고양이 사랑꾼으로 거듭났다면, 실제로 고양이 개체 수가 늘어나게끔 기여했을 수도 있다. 그의 주변에 고양이가 많아진 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근데, 애초에 왜 그는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를 좋아하라는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일까? 90년대에 사는 A가 있다 치자. A는 어느 날 그의 지인 B가 고양이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파한 뒤로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B가 고양이 찬양론을 펼칠 당시에는 축적된 경험을 통해 A가 고양이를 좋아할 것이라는,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2023년을 살아가는 C는 A의 경우보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될 방법이 훨씬 방대하다. C가 어느 날 고양이에 빠지게 되었다면 높은 확률로 그 이전부터 그의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도 고양이 관련 콘텐츠가 많이 나타났을 것이다. 정교화된 알고리즘이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을 분석하여 추천해 줬을 것이므로. 그리고 C가 고양이를 좋아하면 할수록 길거리는 물론 그의 온라인 환경까지 고양이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알고리즘 등의 키워드가 판치는 요즘 시대에는 굳이 길거리까지 안 가도 관심 항목을 자주 마주할 수 있으며, 당연히 우연을 가장한 치밀함이 깔려있다. 필자는 불과 몇 분 전에 검색했던 품목이 바로 광고로 나오는 경험을 수도 없이 겪었다. 물론 애초에 그 품목이 나에게 노출된 경위에도 알고리즘이 큰 비중을 차지했을 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은 이용자들 기분이나 좋으라고 계속해서 취향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더 많은 광고를 삽입할 수 있고, 광고의 타겟팅이 정확할수록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져 더 많은 기업들이 광고를 의뢰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알고리즘은 필연적으로 발전한다. 당신이 취향이라고 믿는 것은 어찌 보면 그저 단순히 시장경제를 작동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 읽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서는 백화점이 얼마나 치밀하게 상술을 펼치는지에 관한 챕터가 있다. 백화점에는 시간을 파악하기 어렵도록 창문과 시계가 잘 없고, 거울 앞에서 걸음이 느려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매장 안팎으로 거울을 많이 배치하여 주변에 진열된 상품에 한 번이라도 눈길이 더 가게 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처럼 판매자는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치밀한 설계를 한다.
다만 해당 책은 2001년에 발간되었고, 당시에는 시계를 숨기고 태양을 가려가며 매장 안에 오래 머무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주요했다면, 현시대 트렌드를 대표하는 백화점인 '더현대 서울'의 꼭대기 층은 통창 구조로 하늘이 다 보인다. 실내에선 각종 팝업스토어가 하루가 멀다 하게 열리고, 가장 핫하다는 음식점, 패션 브랜드는 다 모아놨다. 이제는 오프라인 스토어도 각종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좋아하게 될지를 이미 다 알고 있으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곳에서의 이용자 데이터, 판매 실적 등 또한 미래의 마케팅에 활용될 것이다. 이처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의사 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판단이 차지하는 몫은 줄어들게 된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발생하는 반복적인 우연한 사건에 대해서는 '이거 과연 우연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근본적으로 왜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는지까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다. 이 글은 자신의 선택이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내려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울리는 경종에 가깝다. 심지어 이 메시지가 당신에게 전달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모든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해 볼 시기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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