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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서 맛본 아이스크림

by ALGORIT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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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peror of Ice-Cream

WALLACE STEVENS

Call the roller of big cigars,

The muscular one, and bid him whip

In kitchen cups concupiscent curds.

Let the wenches dawdle in such dress

As they are used to wear, and let the boys

Bring flowers in last month's newspapers.

Let be be finale of see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Take from the dresser of deal,

Lacking the three glass knobs, that sheet

On which she embroidered fantails once

And spread it so as to cover her face.

If her horny feet protrude, they come

To show how cold she is, and dumb.

Let the lamp affix its beam.

The only emperor is the emperor of ice-cream.


장례식 갈 일이 잦아졌다. 처음 장례식에 간 건 초등학교 때 친구의 조부모 상이었다. 처음으로 죽음 앞에 서 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유년기에 경험하기엔 조금 때이른 경험이었다. 처음 향냄새를 맡아보고, 처음 조문이란 걸 해보고, 처음으로 곡소리를 들으며 안주도 밥도 아닌 애매한 음식을 코로 먹은 기억이다. 죽음이 처음으로 실감 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인생에서 죽음은 흔해졌다. 친척, 친구들의 조부모, 친구들의 부모의 죽음. 상주가 돼보기도 했다. 성인이 되자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슬퍼하기도 많이 슬퍼했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많이 무뎌진 걸까. 아니면 상처받기 싫어서 내 마음을 꺼내 보이지 않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장례식장에서 애도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돼 버렸다. 죽음에 둔해졌다.


군 입대를 앞에 두고서 친척의 장례식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다. 오랫동안 가까이했던 사람이었는데, 조문하고 앉아서 돌아가신 경위를 몇 마디 듣고는 이내 그에 대한 기억을 까맣게 잊었다. 그리고 밤이 어둑해지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만 남게 되자, 나는 마음대로 꺼내 먹을 수 있는 맥주를 마시며 힘껏 반가워하며 웃고 떠들었다. 장례식을 일부러 떠들썩하게 한다고도 하지만, 경솔했던 과거에 대한 고백이지만 난 정말 신이 났던 것 같다. 내 반가움은 이토록 잔혹했다. 죽음을 외면했다.



굵은 여송연 피우는 자를 불러라,

힘깨나 쓰는 자를, 그로 하여금 부엌 컵 속에

관능적으로 엉긴 우유를 휘젓도록 하라.

처녀들은 평소 입던 옷들을 걸치고

빈둥거리게 하고, 남자아이들은 꽃을

지난달 신문지에 감싸서 가져오게 하라.

실재가 가상을 끝내게 하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 황제이다.


세 개의 유리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전나무 서랍장에서, 그녀가 한때

공작비둘기를 수놓았던 천을 꺼내어

그녀 얼굴을 덮도록 펼쳐라.

불거져 나온 그녀의 굳은살 발은 그녀가

얼마나 차갑고 말이 없는지를 보여준다.

등불이 그 빛을 고정시켜 비추게 하라.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 황제이다.

[번역 출처] 짧은 영시 (68-4) 월리스 스티븐스 / 아..



20대의 뒤꼍에 서서, 또 다른 한 명과 이별하는 자리에서 문득 이 시가 생각이 났다. 장례식 풍경은 늘 그렇듯 조용한 침묵과 삼가 반가워하는 그 사이 어딘가. 흐느끼는 곡소리 주변에는 슬픔을 구경하려는 얄팍한 마음도 언뜻 보였다. 인간은 참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과 함께 자기반성에 빠져버린 나는 모든 시선을 잠시 차단하고 고인을 기렸다.


한 쪽 방에 여자가 죽어 누워있다. 천으로 덮었는데도 다리가 삐쭉 나와있다. 쓸쓸하게 혼자서 죽어간 가난하고 불쌍한 여인이다. 처량한 죽음을 옆에 두고 아이스크림을 만들 우유를 휘젓고 있다. 처녀들은 일상복을 입고 빈둥거리고, 소년들은 아무 신문에나 꽃을 포장해오란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Let be be finale of seem.' 실제 삶이 허상을 끝내게 하라는 말. 장례식장에서는 좀처럼 적절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화자의 말과 시선이 고인에게 무례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화자는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살아 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유일한 황제라고 두 번이나 칭송하는데, 그것은 삶은 달콤한 것이라는 주문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어떤가. 살아 있음 역시, 달콤하지만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녹아버리고 만다. 떠나간 이를 보내는 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수선했던 내게 조금은 답이 돼줬다. 죽음 앞에서 삶이 보인다. 내 장례식에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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