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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엄마, 엄마

by ALGORITHM

엄마는 나 몰래 암을 앓았다. 병마가 집안을 덮쳐 모두가 1인분 이상을 해야 했던 때 엄마는 암 선고를 받았단다.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 반복되는 하루들을 떨며 보내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엄마는 내게 말했다. 나는 죄책감을 화로 표현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고 엄마는 건강히 살아있다. 몇 가지 음식을 병적으로 배척하고, 작은 변화에도 큰돈을 들여 병원을 찾는 걸 빼면 전과 다를 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서울살이를 하고 나서부터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됐다. 아빠는 병원에 오는 걸 두려워했다. 그는 몇 년을 보호자 침대에서 보내야 했고, 대학 병원 곳곳에 서려있는 그의 상처는 아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몇 달에 한 번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의 보호자가 됐다.


오늘이 그날 중 하루였다. 이제는 슬슬 정기 검진이 우스워질 즘.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들을 보내던 나는 보호자 자격이 지겨워진다.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엄마는 7년째 여전히 그곳에서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부인과 진료실에 들어가자 지난주에 검사했던 차트가 젊은 여의사의 눈에 펼쳐진다. 마우스가 드르륵거리는 소리는 심연까지 진동시키고, 그 회전이 멈출 때 환자와 보호자는 오롯이 의사의 엄중한 선고가 떨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빈다.


안 보이던 용종이 생겼단다.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내시경을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의사에 말에 내 옆에 앉아 있는 중년 여자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치료실의 부름을 기다리며 그녀는 지난 6개월을 순식간에 톺아본 듯하다. 그녀가 했던 말은 이랬다.


‘단 걸 많이 먹었어.’ ‘이번에는 항암을 안 할 거야.’ ‘요즘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어.’ 내게도 두려움이 엄습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나는 그녀에게 넘겨짚지 말라고 다그쳤다. 암 병동의 환자와 보호자는 오랜 투병생활 끝에 의사의 소견에 자의적 해석을 자유자재로 덧붙이는 지경에 이른다. 상식 이상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덮쳐오는 두려움을 가리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나빠 보이지 않는다니 조금 기다려보자.’ 암 병력이 있는 환자의 귀와 머리에 피어나는 그 일말의 부정적인 가능성. 그것은 누구도 배길 수 없는 크고 두려운 것임을 나도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부인과에 딱 하나 있는 젊은 남자는 치료실을 나서는 여성들의 불쾌와 통증을 생생히 느끼며 모친의 손을 잡았다.


검진을 마치고, 다음 진료 시간이 운 좋게 맞았다. 그곳에서 그녀는 6개월 간격의 검사 주기를 1년으로 늘려도 좋겠다는 희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좀 전에 사색이 되었던 얼굴을 잊는다. 나도 마찬가지. 그녀는 하나님을 찾는다. 나는 옆에서 빙긋 웃는다.


삶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 고민할 때쯤 나는 수많은 암 환자들을 마주한다.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혈색 없는 이들을 보며 동정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사랑하는 이들이 나 몰래 이곳에서 벌였을 혈투에 나는 풀이 잔뜩 죽는다. 잊고 있던 내 어린 시절이 되살아난다. 나는 엄마를 늘 사랑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나는 여러분을 사랑한다. 나는 떠난 이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내 주문이 곳곳에 닿길 바라며.


0에게 하지 못한 말을 이곳에 늘어놓았으니 아마 놀랐을 것이다. 나는 0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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