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핸드폰 사용이 일절 금지된 고등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엔 인생에서 가장 피가 끓었던 시기였을 텐데, 밤 열두 시가 되고서야 잠을 청하러 기숙사로 터덜터덜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가 않는다. 물론 누구라도 나의 소속을 들었을 때 '오-' 하고 감탄하고 속으론 질투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제 발로 들어간 곳이었다. 선망을 바라기엔 너무나도 어린 육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온갖 멋진 동물을 상징으로 하는 학교를 가지 못했기에 이도저도 아니게 돼버렸지만.
아무튼 세상과 다소 단절된 환경은 500명 남짓한 인원이 생활하는 4층짜리 건물을 나의 우주로 만들었다. 그 안에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등 돌렸으며, 따뜻하면서 쓸쓸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웃긴지 모르겠는 농담에 웃음소리가 4층까지 들릴 정도로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시답잖은 이유로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몸에 연필냄새를 풍겼다. 누가 그러라고 시켜서 그런 건지 그러고 싶은 놈들만 모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는 모든 것이 모바일로 전환되는 격동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릴 기회가 차단되었기에 우리는 쉬는 시간만 되면 컴퓨터실에 모여 엘클라시코 하이라이트 따위를 보곤 했다. 메시와 호날두가 함께 뛸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시에도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그들은 우리를 컴퓨터 앞으로 결속시켰다. 마치 흑백 TV 시절에 동네 사람들이 잔치라도 열린 듯 한 집에 모여 TV를 보며 감탄했듯이.
한편, 몇몇 안경 쓴 친구들은 윈도우 작업표시줄에 토렌트 아이콘을 수놓으며 갤럭시 S2보다 성능이 구릴 것 같은 PC들을 더욱 혹사시켰다. 당시 그들을 나쁘게 볼 것은 없었는데, 그들이 몸소 불법행위를 자행하며 받아놓은 예능, 영화, 음악 등을 우리는 각자의 PMP, 갤럭시 플레이어, 아이팟 등을 통해 맘껏 누렸다. 어떻게 보면 걔네는 우리들의 홍길동이자 문익점이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학교 전체의 평균 수능 등급이 올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들이 받아둔 파일 중에는 다이나믹듀오의 7집 'Luckynumbers'가 있었다.
당시 힙합 팬을 자처하던 본인에겐 가뭄 속 단비 같은 앨범이었고, 전작들과는 궤가 다른 앨범이어서 호불호도 갈렸지만, 지금 와선 나름 명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필자와 친구들은 '진격의 거인 둘', '쌔끈해', '날개뼈', 'BAAAM', '만루홈런' 등의 트랙들을 질리도록 듣고 불렀다. 그 MP3 파일에 테잎이 있었다면 100% 한껏 늘어났을 터. 여러 트랙 중 '가끔씩 오래 보자'라는 곡은 인상적인 제목으로 뇌리에 박히긴 했으나, 나이를 먹은 동창 친구들이 모여 회포를 푸는 내용의 가사는 당시 우리가 공감할 것이 못되었다. 그런 노래는 아저씨들이나 공감하는 노래지 않나.
그리고 지금 타자를 치는 손의 주인은 내일 7시에 기상해 면도해야 하는 아저씨다. 이 아저씨는 어느 일요일 고등학교 동창들과 회동했다. 3년간 같은 곳만 바라본 녀석들인데 2023년이 돼서 술집에 모인 이놈들은 어찌 이리도 달라져서 술잔을 부딪혀대는지. 나름 인생에 거름망을 끼운 채 살아왔고, 그렇게 끝까지 주변에 남아있는 놈들과 가끔씩 오래 보게 될 때면 별 시답잖은 것에 웃었던 바가지머리 소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제 내후년쯤이면 이 모임에도 청첩장이 왕래하려나 생각하다 보면 감개가 무량하면서도 '가끔씩 오래 보자'를 듣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과거는 무엇보다도 미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기에 우리는 술을 들이켜고는 다시 발버둥 친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글로 뭐라도 해보려는 0과 1은 먼저 만나 한강을 배경으로 비즈니스 미팅을 가졌다. 꾹꾹 눌러쓴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 얼마나 이쁘고 기특한지, 지나간 생각을 붙잡아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뜻깊은지 예찬하며 결의를 다졌다. 돈도 안주는 악덕 대표를 따라와 주고 이끌어주며 솔직함을 전하는 1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그는 N시간 뒤에 그리즈만이 베컴보다 뛰어나다는 당치도 않은 말을 지껄이며 우리가 투닥거리는 친구 사이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어쩌면 우리가 다이나믹 듀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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