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월세방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추위로의 전환이지만, 머리에 창문이 오도록 배치된 구조는 여전히 낯설다. 하늘이 점차 밝아질 준비를 할 시점, 요란한 알람 소리가 날 깨울 때는 이미 차고 무거운 공기가 콧잔등을 한껏 시리게 만든 뒤다. 도톰한 이불을 포대기에서 꺼내고 나니 달력 숫자의 크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가슴은 지금 날씨만큼 차갑다. 돌아온 쌀쌀함이 열정마저 사그라들게 한 것일까 하였으나 생각해 보니 그냥 열정이 차가워졌을 때쯤 날씨가 추워졌을 뿐이었다.
필자는 지난겨울의 끝자락에 적당한 회사의 가장 말단인 인턴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마음은 조급했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으니 빠르게 인정받고자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일하기 일쑤였다. 후일담으로, 나중에 이러한 행동을 자랑하듯 부친에게 얘기하자 그는 그것이 오히려 무능함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쉴 땐 쉬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남겨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아무튼 타고난 묵묵함으로 몸을 굴렸고, 그들은 팀에 발생한 공석을 나로 채우기로 결정했다.
인턴이 업무를 열심히 잘해봐야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나에게 주어진 일은 당연하게도 큰 책임감을 요하지는 않았다. 단순 노동에 가까운 업무도 많았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는 절대 기능하지 못했다. 필자는 그저 일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맡겨지는 업무량이 많아질 때 희열을 느꼈는데, 인턴으로서 유일하게 인정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땠는진 모르지만 난 크게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천천히 발전 중이라고 느끼곤 했다. 그저 내가 말귀를 잘 알아먹고, 써먹을 수 있는 놈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렇게 별 거 아닌 일에 의미를 두자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수 배는 많은 책임을 짊어진 지금. 같은 공식을 적용한다면 그만큼 난 더 행복해져있어야 함이 분명한데,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코를 덥히고자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기고는 지금이 영원하길 바라는 사내다. 지상을 밝히는 해는 더 이상 나에게 줄 열기 따위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일출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중책을 짊어진 모습을 그리며 고요한 파동에서 행복을 느꼈었는데, 막상 파도를 다스릴 수 있게 되자 행복은 저 멀리 태양으로 달아나버렸다.
감흥은 결국은 무뎌진다. 지금 이곳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더 좋은 곳으로 떠난다 해도 난 그곳에서 조금 더 높은 파도를 다룰 수 있게 될 뿐, 또다시 무기력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친구 놈은 자신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치는 축구선수가 해트트릭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엘리트들만 모아놓은 무대에서마저 우월함을 증명해 버린 이는 태양의 뜨거움을 맛봤을까? 그 열기조차 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돼버린 것은 아닐까? 적어도 그 짜릿함을 내가 살면서 느낄 일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현 상태가 계속된다면 난 주위에 파도도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는 이론을 설파하며 강제로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미국 조지아 출신의 '릴 야티(Lil Yatchy)'는 커리어 초창기에 밝고 신나는 상업 음악으로 주목받다가 기존의 스타일과는 완전히 상반된 네오 사이키델리아 장르의 앨범 'Let's Start Here'을 선보이며 프라임 타임을 맞이했다. 힙합 음악을 좋아하다 보면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데, 내가 본 릴 야티는 한계가 뚜렷해 보였고, 나의 이목을 그다지 집중시키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태양을 봤음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 쓸쓸하게 노래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태양 근처에 있어 마땅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유명세를 얻으면서 맛본 태양의 형태는 진정 태양 속으로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태양의 열기는 만져본 자만이 안다. 지금의 내가 그 뜨거움을 겪어보고 싶다고 하면 너무 욕심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평생 태양에 닿을 수 없는 사람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타 죽어도 좋으니 모든 것을 바쳐 뜨거워보고 싶다. 그리고 이 문장들이 불쏘시개가 되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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