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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 데 콩 난다?

by ALGORITHM

콩을 심었는데 콩이 나지 않았다. 하늘 끝까지 닿는 나무가 나왔다. 그리고 그 나무는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어리석은 잭은 더 이상 젖을 짜내지 못하는, 집안에 마지막 남은 소를 콩 한 알과 바꿔온다. 그리고 화가 난 잭의 엄마는 그냥 콩알을 밖에 던져버리고 만다. 그건 마지막 희망을 아무짝에 쓸모없는 콩 한 알과 바꿔온 아들에 대한 질책과 원망이었다. 그날 밤 어리석은 잭조차도 잠 못 이루는 긴 밤을 보냈을 터였다. 다음 날 아침, 잭은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하늘까지 뻗은 콩나무에 올라간 잭은 그곳에서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는 여러 괴물들을 만나고, 황금이 넘치는 곳에서 황금을 가져오기도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가, 조바심에 거위의 배를 가르기도 한다. 그리고 콩나무 위의 세계에서 하프를 훔치던 어리석은 잭은 마침내 괴물에게 발각되어 새로운 세계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콩나무를 베어버리게 된다.


엄마가 던져버린 작은 콩알 하나가 거대한 콩나무로 자라는 바람에 잭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수많은 황금을 얻었고, 욕심 때문에 거위 배를 갈랐으며, 마침내 그 세계를 닫아버리는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연은 얼마나 우리 삶을 지배하는가. 형용할 수도 없을 만큼 무한한 우주에서, 우리 은하수, 태양계 안에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나, 인종, 성별, 지역 그 무엇 하나 선택하지 못하고 세계에 던져진 우리 삶은 우연히 시작한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인연을 맺고, 우연한 기회에 평생을 좌우할 진로를 결정하기도 한다. 한 영화계 명장은 왜 이 일을 하게 됐냐는 질문에 ‘우연히 가입하게 된 영상 제작 동아리에서 재미를 느껴서.’라고 답했다. 다소 맥이 빠지는 답변이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답 중에 하나다.


삶은 우연을 필연으로 귀결시키는 과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우연들과 마주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우연들 중에서 우리 삶을 바꾸는 우연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잭이 다음 날 아침 콩나무를 그저 바라만 봤다면, 혹은 잘라서 땔감으로 사용하려고 했다면 잭과 콩나무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져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인 콩나무 위로 두려워도 올라가 보는 힘. 비록 높은 곳에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도, 뭐든 해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잭의 인생을 바꾼 게 아닐까? 어느 명장의 대답 뒤에 붙을 말들은 이럴 것이다. ‘우연히 가입하게 된 영상 제작 동아리에서 재미를 느꼈고, 나는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내 인생을 돌이켜 봤다. 콩 심은 데 반드시 콩만 나지는 않더라. 어떤 농사는 정성이 부족해 흉작이 들 때도 있고, 밤낮으로 경작해도 역병이 들어 주저 않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는 놀리던 밭에 씨가 날아와 자연스레 많은 수확을 할 때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지나친 콩나무도 수없이 많을 터.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오늘의 나는 어떤 우연을 부여잡아 내 삶에 들였는가.


콩을 심었는데 콩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엄청난 기회를 목전에 둔 사람처럼 전열을 정비한다. 어떤 우연이 내 삶을 바꿀지 설레고 기대된다. 이번 콩나무에는 반드시 올라가 보리라 다짐하며 우연처럼 다가온 이 기회를 내 삶 속으로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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