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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Is Blue

by ALGORITHM

지난 월요일 새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또 한 번 지구 반대편 팬을 패배에 대해 초연하게 만들었다.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의 더비 매치에서 3대 0 스코어로 무기력하게 져버리고 만 것인데, 맨유의 최고 레전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은퇴한 뒤로 두 팀의 격차는 확연히 벌어졌기에 이제 맨유의 패배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저 '공은 둥글다'라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꿰뚫는 명언을 속으로 되뇌며 기적을 바랐을 뿐이었지만서도, 정작 라이벌전 패배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팀을 대상으로 '그럼 그렇지'라며 열을 식혀야 하는 심정은 겪어본 자만이 알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20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 트레블 1회에 빛나는 맨유는 어느덧 10년 넘게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을 해보지 못했으며, 리그 4위까지 진출하는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기 위해 매 시즌 경쟁하는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2년 연속으로 챔스 진출 실패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퍼거슨의 은퇴 이후 5명의 정식 감독, 1명의 임시 감독, 2명의 감독 대행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맨유를 이전의 위치에 올려놓는 위업은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채 맨유의 감독직은 독이 한가득 든 성배가 되었다.


맨유의 마지막 리그 우승은 12/13 시즌인데, 공교롭게도 필자는 13/14 시즌부터 맨유의 팬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해외축구에 큰 관심을 두진 않았고 다양한 팀을 좋아하다가, 퍼거슨 감독이 은퇴하고 그 지휘봉을 에버튼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넘겨받는 모습을 보며 '세대교체'라는 키워드에 꽂힌 것이 화근이었다. 맨유처럼 유구한 역사의 팀이 새로운 감독과 선수들로 리빌딩된다는 소식이 가슴에 불을 지펴 버리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모예스 감독 부임 이후 순위는 곤두박질치며 맨유는 각종 치욕스런 별명을 얻게 되었고, 그게 무엇인지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싫다. 퍼거슨 은퇴 이후 6번의 프리미어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린 맨시티와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행보이기에 더욱 시큰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맨유는 과거의 영광 빼면 그저 그런 팀이 돼버린 듯한데 필자는 심지어 그 당시의 영광조차 누려보지 못했으며, 이번 시즌 역시 우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 감독과 선수의 갈등 등 댈만한 핑계는 차고 넘치지만 이대로라면 현행 감독인 에릭 텐 하흐 역시 오래 보기 힘들 것이다. 내년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더 이상 들지 않으며, 이제는 맨유가 찬란했던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도 스멀스멀 든다.


TELEMMGLPICT000351889349_16963678746110_trans_NvBQzQNjv4Bq-wioWl5aH7fAEJ8IWJw2Y-il7a1KV2STY3xRqqFt_No.jpeg?imwidth=680 출처: Telegraph

내가 애정하는 팀이 더는 이전 같을 수 없음을 염두에 두니 마약에 손을 댄 스타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었다. 정점을 찍어본 자가 맞이하는 내리막길은 심장이 얼어버릴 지경으로 차갑지 않을까. 무한한 공허함 속에서는 그 무엇도 쾌감으로 다가오지 못할 것만 같다. 최근 나의 영웅이 마약 스캔들에 휘말렸다는 소식에 그 심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기도 했다. 이런 맨유 팬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맨시티,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은 마치 마약과도 같다. 모든 것을 거며 쥐었지만 이젠 가진 것이 없는 팀을 저버리고 강자의 편으로 돌아서는 것으로 쾌락을 느낄 수 있다니, 너무나도 큰 유혹이지 않은가.


지금 맨체스터는 명백히 하늘빛이다. 하지만 나는 모 유행가 가사처럼 영원한 것은 절대 없으며 모든 것이 흥망성쇠를 겪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맨유 역시 창단 이후 끊임없이 잘 나가던 클럽이 아니었으며, 황금기만큼 암흑기도 길었다. 따라서 현재 맨유의 시련도, 맨시티의 부흥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적어도 그 전환이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또한 팬을 자처한 뒤로 리그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엔 맨시티 팬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낼 것이다. 물론 밥먹듯이 우승하는 맨시티가 너무나도 부러운 것은 사실이고 직전의 문장은 정신승리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제 당장의 쾌락을 좇지 않고 축구를 즐길 줄 아는 사내이다. 이 머저리 같은 클럽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다니, 참 웃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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