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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승

by ALGORITHM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축축한 한숨을 내뿜으며 회사를 나섰다. 종각역 주변으로는 술과 차가운 공기에 달큰하게 취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취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버스 앞을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지나며 온갖 주종과 안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이 냄새는 나의 허기를 단념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취한 이들과 메스꺼움을 공유하며 종각역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한 사내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그의 끈적한 입소리만으로 이미 그가 술이 한참 됐음을 알았다. 내가 그의 취기 섞인 목소리를 무시하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가 다시 나를 불렀다.


“아가씨.”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빨간 목 위로 오돌토돌한 돌기들이 솟아 있었는데, 마치 털을 모두 뽑아버린 수탉의 목 같았다. 목 가운데에는 볼록한 목젖이 있었는데, 그것이 우물쭈물 대더니 위로 꿀렁이고 올라갔다가, 이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같은 곳으로 가면 합승하고 싶습니다. 어디까지 가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의 목은 조금 전보다 분명 더 빨개지고 있었다. 그는 이 거리를 지나며 수많은 합승을 보았으리라. 방향이 비슷한 이들끼리, 혹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나는 고개를 여전히 푹 숙이고 있다가 알코올을 조금도 분해할 수 없는 저 남자가, 이 한마디 부탁을 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생각하니 그의 술잔들이 가상하기도 했다.


“종로 3가요.”


“저도, 저도 종로 3가까지 갑니다.”


그는 잽싸게 대답했다. 그리고 난 그에게 한 번 속아주기로 했다. 그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팔을 차도로 뻗어 택시를 잡았고, 먼저 운전석 뒤편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는 뒷문을 열어두었고, 그래서 나도 그의 옆에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합승을 하게 되었다. 나는 문득 그의 용모가 궁금해졌다. 온통 그의 목에 돋은 붉은 닭살과 목젖만 보다 보니 정작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가에 바짝 붙어 온몸을 웅크리고 있는 젊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얇은 손목으로 손잡이를 잡고 창문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가 가여웠다.


5분도 지나지 않아 택시는 멈췄다. 나는 택시비를 선뜻 지불하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그가 아까보다도 더 취한 목소리로 뭐라고 웅얼댔지만 난 그의 부름을 묵살했다.


역사에 들어서서 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양복을 입은 수많은 취객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순간 스크린 도어 반대편에 수탉의 목을 하고 있는 나와 합승한 사내가 잰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그 가여운 사내가 편안히 자리를 잡고 누워 잠에 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의 합승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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