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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 좋은 선물

by ALGORITHM

시대 이야기를 피하고자 하였으나, 요즘 들어 선물은 주기도 받기도 너무 쉽다. 아니, 원래부터 선물의 왕래가 이리도 잦았던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는 그 명분이 너무나도 많다. 누군가에게 받았으니 나도 응당 답례를 해야 하거나, 누군가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거나, 혹은 단지 그런 마음이 들었거나. 필자는 마지막 항목이 이 선물 그 본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연유로 선물을 주는 빈도가 가장 낮은 듯하다.


특별히 애정하는 몇몇을 위해서는 몇 시간, 며칠이 걸리도록 고민하기도 하지만, 선물 주기도 바쁜 요즘은 모두에게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같은 플랫폼이 주기 좋은 선물을 순위대로 정렬해 주어 실패 확률을 한층 줄이고 고민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카카오톡은 친절하게도 홈 화면에 매일마다 그날은 아무개의 생일이라고 띄워 놓는데, 마치 “이 사람의 생일인지 뻔히 아는 상태에서 이렇게 간편하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는 데도 그냥 넘어간다면 너는 쪼잔하고 사회성 없는 사람인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주변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나는 결국 적당한 가격대의 선물을 카카오페이를 통해 결제할 수밖에 없다.


선물을 자주 주고받게 된 것 자체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 외에는 큰 불만은 없다. 연락이 뜸하던 누군가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된다는 점에서는 꽤 고맙기도 하다. 다만, 선물이란 자고로 줄 때의 설렘이 그 의미의 반은 차지하기 마련인데, 기술의 발전이 우리로 하여금 그 소중함을 잊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하며 매번 씁쓸함을 느낀다. 물론 선물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기술이 축복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선물은 자고로 줄 맛이 나야 하는데, 요즘에는 주고받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듯하다.


만물이 그러하듯 선물 역시 그 빈도가 잦아지면 특별함은 사라지는 법이다. 안 그래도 선물 자체에 대한 감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심지어는 선택지가 너무 뻔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에는 카카오가 제시하는 랭킹이 곧 선물 가이드라인이며, 그것을 벗어난 선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특정 인물과의 친밀도를 고려하다 보면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예측이 가능할 지경이다.


당연히 선물을 받는 사람도 고민의 흔적이 담긴 선물에 더욱 감정이 요동치지 않겠는가? 필자는 주변에서 인정하는 치킨 사랑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낭만을 추구하기에 BBQ 기프티콘으로는 감동을 느낄 수 없다. 물론 챙겨준 이들에게는 매우 고맙지만, 그들과는 그저 치킨 따위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인 것이다. 당연히 치킨이 값싸서 하는 말은 아니고, 그보다 훨씬 저렴하더라도 취향을 고려한 선물이 평생 잊히지 않을 가능성이 몇 곱절은 높지 않을까 싶다. 어찌 보면 카카오톡 선물하기 랭킹은 ‘기억되기 어려운 선물 랭킹’과 같은 말이다.


카카오톡에는 자신이 원하는 선물 리스트를 설정하여 다른 이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퍽 재미있는 기능이 있다. 처음에는 그곳에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당당히 늘여 놓는 것이 꽤나 속물같이 보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어차피 선물에 대단한 의미가 없다면 필요한 것을 받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선택이 용기 있었음을 곱씹어보게 된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10주년 통계를 보면 한 번도 선물을 안 주고 1,385명에게 선물을 받기만 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길래 베풀지 않고도 그 정도의 성의표시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선물이 너무 쉬워졌다는 회의감에 대해 여태 끄적이다가도 어쩔 수 없이 그가 부러워지게 된다. 이런 글을 쓰게 된 배경도 그간 받아온 선물의 양과 액수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받는 선물의 양, 들어간 고민의 시간이 결국 내가 살아온 삶을 대변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만큼 선물함의 밀도가 곧 나의 성적표이며 그것을 꽉꽉 채우고자 애써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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