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른들은 다 바보

by ALGORITHM

근래 직장에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는 팀원들의 익숙지 않은 초췌한 몰골을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마주하도록 만들었다. 그동안은 운이 좋게도 야근을 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해가 미처 다 떨어지기 전에 이불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기존에 하던 일은 그대로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고, 퇴근길에는 텅 빈 지하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4호선 전철의 널널한 스테인리스 좌석은 은근히 반가웠으며, 딱딱하고 미끄러운 착좌감이었지만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쾌적함을 느끼기도 했다.


연속되는 야근은 허리를 굽어지게 만들었는데,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곱추처럼 지내는 것이 이내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참 싫었다. 잠과 업무로만 가득 차있는 일상은 직장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심지어 직원이 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나로서는 프로젝트에서 활약을 펼치기도 어려웠으므로 프로젝트에서 성취를 느끼는 것마저 녹록지 않았다. 그렇게 2~3주간 늦은 시간 귀가해 방전된 몸을 누이는 나날을 보냈다.


프로젝트가 끝났고, 이제는 정시 퇴근을 해도 하늘에 태양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사실 한참 전부터 그랬는데 딱히 인식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익숙할수록 소중하지 않아 지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니. 그리고 나는 다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소중한 여유를 뜻깊게 사용하는 법을 모두 까먹은 바보가 된 기분이다.


헬스장은 돈만 내고 가지 않은 지 몇 주가 되어 사장님이 좋아할 만한 우수 고객이 되었고, 읽던 책에는 먼지가 폭신하게 깔렸다. 글을 쓰는 법도 까먹어 지금도 의자에서 멍하니 한 시간을 보낸 뒤 잡생각이 씻겨나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20분간의 샤워를 통해 목욕재계를 꾀하기도 했다(별 효과는 없었다). 그간 건강한 도파민 유발 행위들이 몸에 익도록 나름대로의 공을 들였는데, 또다시 나는 핑계뿐인 사람으로 회귀하고 있는 자신을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포기하게 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서글픈데, 요즈음은 어른이 될수록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사는 법을 잊게 되는 느낌이다. 적어도 나에게 업무량과 핑계를 대는 빈도는 비례하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일을 통해 성취를 크게 느끼는 이들은 생각이 많이 다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과 일상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저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이들의 현실도피일 뿐이다. 하는 일이 즐겁고 뿌듯하면 자다가도 출근 생각에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까 싶은데, 나로서는 그런 사람이 드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기업의 뜻을 반영한 글을 작성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형식적인 글솜씨는 늘어가고 있는데, 바보가 된 머리로 꾸역꾸역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참 우습다. 쓰고 싶은 글을 써서는 반응을 끌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원치 않는 글을 쓰며 월급을 받고 있는 상황도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어른들은 나에게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힘들다고 했다. 그건 그냥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아본 적이 없어 바보가 된 어른들이 대는 핑계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0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혼밥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