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에 몰두하는 모습은 왜인지 생에 의지를 내보이는 것 같아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데가 있다. 난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이어폰을 꼽고 작은 화면에 빠져들었다.
자취 2년 차. 학교 근처에 7평 남짓의 원룸을 얻어 살고 있는 내게는 끼니가 해결하기 가장 버거운 일이다. 하루 세 번을 다 차려먹기는 힘드니 첫 끼는 전날 삶아놓은 계란과 밥으로 때운다. 점심은 아침에 부족했던 영양소를 충분히 보충한다는 생각으로 보통 나가서 먹는데, 사람과의 접촉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나는 대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 슬쩍 학생식당에서 해결하곤 한다. 그곳은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지만 그래도 썩 유쾌하진 않다. 그런대로 이 루틴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자취방이 있는 동네로 돌아왔을 때, 혼자 쉴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집에서 학생 식당으로 가는 길을 보며 늘어진 옷처럼 너덜너덜하게 작은 단칸방으로 돌아왔다. 태연한 척했지만 혼자 하는 식사가 외로웠던가 보다 생각하며 무의식을 달랜다. 허기가 슬슬 지겨워진다. 본가에 내려가는 횟수가 전보다 많아졌다.
하루는 며칠을 집 밖을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아팠다. 그때도 이 끼니가 말썽이었는데, 잇따른 배달음식으로 음식물과 재활용 쓰레기가 쌓여가자 나는 집 근처 뼈 해장국 집엘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은 식당임에도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설령 사람이 붐빈다고 하더라도 종업원들은 혼자 온 손님을 전혀 무안주지 않고 조용히 뚝배기를 내오곤 했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핸드폰에 몰입해 다른 테이블을 의식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태연한 일인 극이 시작된다.
그런데 한창 저녁식사를 할 무렵인데도 식당엔 손님이 아무도 없다. 평소 같으면 삼겹살을 해장국과 같이 파는 이 집은 YTN의 앵커와 손님들의 말소리, 그리고 고기 굽는 소리가 어우러져 수선스러운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소리가 멈춰 있었다. 나는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한다. 그리고 왜인지 이어폰을 꼽지 않고 싶다. 가게는 여전히 조용하다.
텅 빈 식당에서 누구도 의식할 필요가 없어지자 물컹한 시래기 씹는 소리와 국물 삼키는 소리가 귀에 생생히 들렸다. 나는 해장국의 뼈를 바르다 말고 주변을 둘러보기도 한다. 여전히 가게는 조용히 비어있다. 식사를 마친 나는 평소보다 훨씬 여유롭게 물을 마시며 입을 헹군다. 그리고 그제야 TV 앞에 모여 뉴스를 보고 있는 종업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들에게는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기준을 알 수 없는 선별이지만, 어쨌든 그렇다. 오랜만에 편안한 혼밥을 해 운이 좋다는 생각도 잠시 펄펄 끓는 열에 뜨거운 국물을 넣은 탓인지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감기를 핑계로 쓰고 온 마스크를 하고 가게를 나선다.
여자친구와 두부 집엘 갔다. 처음 온 지역이 생경하다.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정식 두 개를 시킨다. 옆 테이블에 매일같이 오는 듯한 두 직장인이 주문을 한다. 정식이 아니었다. 음식을 잘못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메뉴는 실망스럽다. 그래도 싫진 않다. 두부를 누가 이 돈 주고 먹냐는 말이 혀끝을 맴돈다. 왜인지 웃으며 참을 수 있었다. 일찍이 식사를 마친 나는 천천히 식사를 마무리하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본다. 생에 의지 따윈 찾아볼 수 없다.
혼밥엔 아름다움이 안 보인다. 짠함을 포장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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