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마난 새끼가.”
“뭐, 니가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씨발.”
“뭐 씨발 뭐. 해봐.”
철도공사 파업이 한창이던 어느 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잠원을 향해 가는 지하철은 승객을 세 번에 나눠 태울 정도로 지연됐다. 고향에 내려갔다 올라온 나는 퇴근길의 서울이 다시 생경해진다. 그날은 더욱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그리고 서로의 들숨과 날숨이 마구 섞이던 그 순간 정적을 깨고 두 남녀가 욕지거리를 시작한다.
앞뒤로 몸을 맞대고 있던 두 남녀는 각각 스무 살쯤 된 조금 왜소한 청년과, 서른 살이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높아진 언성은 안 그래도 조용한 차내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그들 주변엔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도 있었지만 모두 외면할 뿐이었다. 서로를 향한 폭언은 점차 가열되더니 상대의 키, 얼굴, 행색을 향한 비난으로 변하고 말았다. 논쟁은 그렇게 한참 지속되었고, 남자가 하차하고 나서야 겨우 끝났다.
지하철에선 별일이 다 일어난다. 정확한 스텝으로 로우킥을 꽂는 사람, 이어폰을 꼽고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사람, 단소로 연신 때리는 흉내만 내는 사람 등등. 바람 잘날 없는 이 지하철은 서울시민의 발이기도 하지만 무대이자, 싸움판이 되기도 한다. 지하철만큼 시민들의 희로애락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그러다 문득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에 꾸겨져 출퇴근하는 이들이 짠하다. 하루 이틀도 힘든 내게, 평생을 견뎌온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재수학원에 다닐 때 김포에서 신논현까지 9호선을 타고 다녔는데, 이때보다 생생한 서울은 내게 없었다. 난 9호선 증량 소식만을 간절히 기다렸고, 조만간 사고가 터질 것 같은 불안을 느꼈지만, 이곳 서울은 엄청난 인내와 적응력으로 살아내고 있다.
지하철뿐만이 아니다.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은 버스 전쟁이다. 퇴근하고 나면 쉬기 바쁘다는 말을 증명하듯 버스에서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의 손을 당장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 뉴스엔 어르신들의 무임승차를 힐난하는 댓글들이 넘친다. 출퇴근 시간만큼은 무료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여느 정치인도 표 앞에서는 장사 없다. 누구도 쉬이 용기 내지 못하고 곪을 대로 곪아버린 대중교통 과밀을 다만 참을 뿐이다. 문득 앞뒤로 살을 맞대고 저녁 식사 대신 메스꺼운 욕을 주고받은 두 남녀의 다툼이 필연적이라고 느껴진다.
서울에는 탱크가 물러가고 봄이 왔다. 그리고 여러 번의 계절을 반복한 서울은 아직도 겨울에 머무르는 듯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오가는 길만큼은 편히 쉴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이에게 봄의 꽃을 선물할 시민들의 한숨을 담고 오늘도 버스와 지하철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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