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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과 묘(墓)

by ALGORITHM

나의 부모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효자 효부다. 조부모를 모신 교회의 공동묘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살며 삶이 무료하거나 심란해지면 호로록 달려가 문안인사를 하고 온다. 그뿐 만이 아니다. 비석 뒤 편에는 호미와 나무젓가락을 두어 이웃으로부터 넘어오는 넝쿨과 잡초들을 봉분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여 떠나간 이들의 마음을 흠흠하게 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 나이기에 유독 동그랗고 잡티 없이 노란 봉분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부모의 발자국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들의 삶을 유추하며 쓴 입맛을 다신다.

묘지는 큰 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파도치지 않고 잠잠히 고여있는 모습이 포근해 보인다. 겨울이면 철새들이 몰려와 한 데 뭉쳐서 추위를 달래곤 하는 넉넉한 곳이기도 하다. 나의 부모 역시 같은 곳에서 저수지를 내려다보면서 아늑함을 느끼며 스스로를 달랬을 것이다. 다만 여름이면 저수지에서 퀴퀴한 녹조 냄새가 올라오는데, 더우니 오래 머물지 말고 얼른 가라는 고인의 뜻이라며 부부는 악취마저도 효심으로 승화했다.

최근에 이 부부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세상을 뜬 지 각각 25년과 10년이 넘은 두 고인의 잔재를 화장하여 정리하고, 봉분을 깎아 평평하게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25년을 부지런히 문안 인사를 올리던 이들에게 번거로움이 그 이유는 아니었을 터.

부부의, 특히 아버지의 심경 변화는 노령연금 수령에서 기인했다. 본인에게 노령이라는 수식이 붙자 매장한 부모의 잔재를 서둘러 화장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의 부모는 당신의 자식들에게 극진한 효심까지는 물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봉분에 대한 책임을 조금도 나누지 않고 스스로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25년을 애써 가꿔온 둥근 봉분을 연금 수령을 이유로 허물어뜨린다는 게 서글프고 우습기도 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30년만 지나면 한국의 평균연령이 57세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이른 연금을 받는 것이니 기분 좋게 생각하고 봉분은 조금 더 두고 보시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실없는 농에 웃음만 지을 뿐, 이미 결론을 낸 듯했다. 25년을 상주 노릇을 해온 두 효자 부부는 봉분을 깎으며 마침내 마지막 상복을 벗는 것이었다.

다음 달이면 나는 기억에 없는 할아버지와, 그리운 나의 할머니를 뵈러 갈 것 같다. 봉분이 모두 으스러지고 평평해진 묘위에 새로운 비석을 세우고 나서도 나의 부모의 발길은 당분간은 더 잦아질 것이다. 더불어 나의 마음도 더욱 바빠질 것 같다. 노령이 된 부모가 언제라도 떠나갈 수도 있다는 섬뜩함을 덜컥 느꼈기 때문이다. 연금이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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