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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소나타

by ALGORITHM

명품은 이따금씩 일반적인 경제 법칙을 따르지 않고 가격이 높아질수록 수요 또한 상승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 a.k.a ‘강남 소나타‘가 있다. 별명에 걸맞게, 가격엔 걸맞지 않게 벤츠는 한국에서 교회나 치킨집처럼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에서 S-클래스는 13,204대, E-클래스는 27,429대가 판매됐다. 숫자가 와닿지 않는가? 한국은 작년 기준 세계에서 S-클래스가 3번째로, E-클래스는 무려 첫 번째로 많이 팔린 국가이다. 한국의 경제 수준(2022년 기준 GDP 13위), 인구(29위) 등을 고려하면 정말 얼척 없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S-클래스의 가격은 약 1억 4천만 원부터 시작한다. 이 같은 성과를 보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의 CEO는 7월 1일 독일 본사로 승진 부임했다.


물론 한국에서 특히 자동차가 과시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건스탠리의 분석 결과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전한다. 집을 못 사게 된 탓에 그 돈으로 루이비통이나 사기로 한 것일까? 정확히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이 따위 어쭙잖은 외침으로 벤츠 구매 예정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 갑자기 건전 소비 홍보대사라도 된 마냥 이런 얘기를 설파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들이 벌이에 비해 과한 소비를 뽐내는 것 자체도 별로지만, 필자 또한 그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 싫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인은 할로윈데이 참사가 벌어진 당일 현장에 있었다. 다행히도 사건이 발생할 당시엔 사람이 비교적 적은 한남동으로 피신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다. 다만, 유행을 좇다가 사람에 깔려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인파 속으로 제발을 들였다는 데에 환멸감을 느꼈고, 그 책임을 인스타그램으로 돌리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따위가 없었다면 이쁘고 비싼 옷, 맛있고 비싼 음식 등을 누리기 위해 가만히 있으면 뒤쳐지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처럼 남들 이상으로 노력할 필요가 애초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스타그램 비활성화 버튼을 누르고 나니 생각보다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사실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은 나한테 영향을 주고 있지 않았으며, 그저 내가 근본적으로 남들 시선을 엄청 의식하며 돋보이고 싶은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나 자신보다 유명 핫플레이스에서 스쳐 지나가는 김 아무개에게 더 잘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봐주는 이가 없었다면 몇 십만 원짜리 옷, 신발들은 거들떠도 안 봤을 것이다. 인스타는 죄가 없음을 알게 된 현재는 비밀 계정을 만들어 의류, 음악 관련 정보만 얻고 지인의 소식은 듣지 않기로 하며 옹졸한 마지막 타협을 했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 시선 따 위 신경 쓰지 말고 자신만의 것을 추구해라’ 같은 조언 따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위인도 못 된다. 여전히 지인 및 가족이 벤츠를 샀다는 소식은 쓰라리며, 삼각별의 짜릿한 하차감을 운전을 하지 않음에도 은근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여자친구에게 “난 돈이 많아도 누구나 다 타는 벤츠는 안 탈 거야. 차라리 제네시스를 타겠어.”라는 같잖은 말로 자신을 속였다. 타인의 눈치를 안 보는 척도 구리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오히려 대놓고 유행을 추구하는 이들의 솔직함이 더 나아보이기도 하다. 기안84가 부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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