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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난슬 Apr 16. 2022

벚꽃이 필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언니랑 차를 타고 가는데 지나는 길의 나무들이 다 듬성듬성한 녹색이었다. 가끔은 분홍색도 보였다. 그건 아마 벚꽃이었을 것이다. 저번 주 주말에는 분명 활짝 피었던 것 같은데 언제 다 떨어지고 푸른 잎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봄의 색으로 분홍을 떠올리는 건 아마 팔 할은 벚꽃 덕분일 것이다. 그만큼 봄에 피는 벚꽃은 당연한 거였다. 벚꽃은 시린 날들이 지나고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그 사이에 피는 강한 꽃이었다. 벚꽃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하면 몇 개월간 넣어두었던 새 계절의 옷을 꺼내는 시기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꽃으로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은 가장 낭만적인 알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벚꽃에 감흥이 없었던 십 대를 지나 이십 대 초반에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남들이 하는 꽃놀이를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몇 번 해봤는데 참 좋았다. 철저히 준비해서 본격적으로 즐긴 건 아니고 일정한 간격마다 심어진 벚꽃나무를 느긋하게 구경하는 게 우리의 꽃놀이 었다. 그러다 스물셋 올해에는 근처 호수 공원에서 데이트를 했다. 사람도 많고 벚꽃도 많고 이름 모를 꽃도 많았다. 앞으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내 수명만큼만 안 남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런데 정말 내 수명만큼이나 남았을까? 일정한 주기가 있었던 봄꽃의 개화 시기가 점점 겹치고 있다. 개화 시기가 5월인 꽃을 4월에 볼 수 있고 4월인 꽃은 3월부터 볼 수 있었다. 봄꽃축제가 예년보다 빠른 날 개최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일정한 속도가 있었던 것들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흐름을 되돌리지 못하면 우리가 알던 봄은 더 이상 봄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봄이 주는 것들, 새로움과 따뜻함을 잃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벚꽃을 기다리는 게 아닌 추억해야만 하는 날이 닥쳐오고 있다. 하나의 계절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초조하다. 사실은 봄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그리고 세상에 살아있는 수많은 것들이 멸종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 체감되고 있다. 거기에 인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사실 너무나 당연해서...


나는 사람도 좋고 봄도 좋고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으니까 모든 게 다 예전의 속도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4월에는 벚꽃이 피고 5월에는 튤립이 피는 것을 보고 싶다. 모든 것이 말라죽은 다음에는 이런 생각도 다 소용없게 될 것이다. 다 바스러진 땅 위에 인간만 살아 숨 쉴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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