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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난슬 Mar 28. 2022

그 얼굴

강사의 목소리가 점점 흐릿해진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거의 엎드려있다. 눈두덩이에 안 보이는 무게추가 올라온 것처럼 눈 뜨기가 힘겹다. 애써 고개를 들고 눈을 부릅떴다. 나처럼 정신이 기진맥진한 수십 명을 앞에 둔 강사는 버튼을 눌러놓은 것처럼 끊임없이 말했다. 강의 종료까진 아직 이십 분이나 남았다. 지금처럼 무언가가 심장을 누르고 몸을 조이는 것처럼 답답할 때는 미래를 그린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의 나를 상상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미래의 나는 노량진 근처에도 올 일이 없을 거라고,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지겹고 비슷한 날들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덜 초라할 것이다. 내 직업은 공무원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지 않는 업무가 원하지 않는 공부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고 나를 달래면 정신을 좀 차릴 수 있게 된다. 강사의 입에서 수고했다는 말이 나오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강의가 끝났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강사는 누구시냐고 물으며 문을 조금 열었다. 자그마한 체구가 대답 없이 손으로 문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느리게 걷는 그의 뒤통수를 보던 강사는 무심히 강의실에서 나가버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방문자는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어 있었다. 등에 멘 커다란 가방이 몸을 더 낮아 보이게 했다. 내 앞에서 엎드려있던 남자는 어느새 일어나 교재를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다. 남자의 자다 깬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저 할머니 뭐야."

할머니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떡이었다. 일회용 용기에 비닐로 포장된 떡을 하나씩 꺼내 들며 이건 가래떡이고 이건 콩떡이라는 설명을 이어갔다. 자기 짐을 다 챙긴 학생들은 할머니를 모른체하고 강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에 4,000원. 두 개 사면 6,000원. 세 개 사면 10,000원."

다 새는 발음인데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가방을 맨 학생들은 지체 없이 강의실에서 나갔다. 평소에 무리를 지어 다니던 학생 몇몇은 강의실 뒤쪽에서 점심 메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강의실 앞과 뒤는 다른 세상 같았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다르지만 그게 그들 각자의 일상일 것이다. 무리 지은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나가는 순간에도 즐겁게 떠들었다. 이제 강의실에는 나와 할머니뿐이다. 할머니가 나를 빤히 본다.

"나 이거 못 팔면 굶어 죽어요."

한 번 눈이 마주치자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거무죽죽한 할머니의 얼굴 너머에서 온갖 불편함이 나를 잡아먹을 듯 몰려온다. 이런 느낌을 처음 겪은 건 아니었다. 지하철에서도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지친 정신과 몸으로 애써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서 나를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떡을 쥔 들고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저는... 저는..."

옴짝달싹 못 하는 동안 다음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강의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조용했던 강의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끄러워졌다. 들어오면서 할머니를 본 사람들은 못 볼 걸 본 것처럼 바로 고개를 돌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들어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학생들의 무거운 가방에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빠르게 걸었다.





과제하면서 쓴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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