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23년 동안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임금을 포함한 상관의 부당한 지시와 청탁을 거절했다는 등의 이유로 세 차례 파직당하고, 두 차례나 백의종군했다. 그는 무장으로서 불패 신화를 썼을 뿐 아니라 공직자로서도 청렴결백한 인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이 철수하는 도중이었으므로 조선과 명나라 군대는 굳이 접전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단 한 명의 왜군도 살려 보내려 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퇴로를 편히 열어주지 않았다. 이순신이 사망한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은 그가 피하고자 했다면 피할 수도 있는 전투였다. 혹자는 이순신이 종전 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전투에서 갑옷을 벗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도 한다.
용렬한 찌질이 선조는 임란 내내 이순신을 비롯한 관군 장수 및 의병장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실제로 의병장 김덕령을 모반죄로 엮어서 죽이기도 했으며 이순신도 갖은 고문을 당하고 백의종군까지 감수해야 했다. 자신은 조선 반도의 끝인 의주까지 도망가 언제라도 요동으로 망명할 궁리만 하였는데 관군 및 의병장들은 혁혁한 전공으로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세자로서 분조를 이끌며 전장을 누볐던 광해군조차 아비 선조는 시기했을 정도였으니 다른 장수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장수로서 뿐 아니라 공직자로서도 존경받아 마땅한 이순신, 그의 리더십을 남한의 공직자들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