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지혜나 진보성의 잣대는 아니다
유교 문화권에 속했던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엄격한 차례와 복종 관계를 인정하는 말)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장유유서가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고 배려하는 등의 긍정적 기능도 있지만 나이가 억압 및 차별의 도구로 작용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를 비롯한 어느 사회라도 특정 문화와 이념이 전 사회를 완벽하게 전일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다. 문제는 특정 시기 및 문화의 긍정과 부정적 측면 중 어느 부분이 얼마만큼 시민 및 사회에 영향을 주느냐가 관건이다. 질서, 사상 및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미치는 폭과 깊이를 기준으로 한 사회의 주류 문화를 규정할 수 있다. 예컨대, 엄밀한 계량적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회 구성원 및 여러 집단에서 장유유서가 작용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전반적으로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의 영향 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는 장유유서의 문화의 영향권에 있다.
IMF 경제 위기 이후에 약화하기는 했지만 한국 기업 및 공무원 사회에서 연공서열제는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여러 측면에서 나이가 전가의 보도로서 위력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젊은 사람에게나 나이 든 사람에게나 다 들어맞는다. 젊지만 그의 육체는 연약하고 정신은 쇠약하며 수구적일 수 있고, 나이 들었지만 그의 육체는 강건하고 정신은 건강하며 진보적일 수도 있다. 젊지만 지혜로울 수 있고, 나이 들었지만 어리석을 수도 있다. 요컨대 육체는 별개로 하더라도 나이만으로 정신적 활력과 지혜의 여부를 논할 수 없으므로 자신은 젊어서 활력이 있고 진보적이라거나 자신은 나이가 들어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자연의 이치를 빼놓고는 자연自然스러운 것(스스로 그러한 것)은 없다. 어느 시점에서의 한 사람의 진면목은 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총합이다. 물론 엄밀하게 뇌 과학을 적용한다면 태아 시절의 DNA와 환경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람의 의식과 행동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세계관으로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좌우한다.
사람은 그의 정태적 언행이 아니라 그의 통시적 언행으로 판단해야 한다. 특히 몇 마디 말이 아닌 누적된 ‘행동’으로 한 사람의 진면목을 평가해야 된다. 말은 때에 따라 사람의 본심을 은폐할 수도 있지만 누적된 행동은 거의 대부분 의식의 직접적 반영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전에 나는 남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 나는 남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서도 행실을 살피게 되었다.”라고 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특정 시점의 행동만으로 쉽사리 재단해서는 안 된다. 과거 어느 때 부족하고 올바른 길을 걷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환골탈태하여 계속해서 개선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반대로 한때 올바른 삶을 살았더라도 여러모로 나빠지고 변절한 채 살아간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행동의 지속성 및 지속 기간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제기되는 정치권의 세대교체 논의와 주장이 나이 든 정치인은 모두 물러나고 젊은 정치인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본질을 빗나간 것이다. ‘나이’를 둘러싼 논쟁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사상적 지향점이 기준이 되어야 하며 젊든 나이가 들었든 그의 ‘뇌’가 관건이다.
아래 글은 독일 출신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인데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한다. 청춘이란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와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예순 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상실할 때는 영혼이 주름진다. 근심, 두려움, 자신감의 상실은 정신을 굴복시키고 영혼을 한낱 재로 소멸시킨다.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에 대한 호기심, 미래에 대한 아이와 같은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과 인생이라는 게임에 대한 즐거움이 있다. 그대의 가슴, 나의 가슴 한가운데는 이심전심의 무선국이 있다. 그것은 조물주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아름다움, 희망, 생기, 용기, 힘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한 당신은 그만큼 젊을 것이다.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이다. 그러나 당신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