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4
2025. 3. 14. 금요일 오후 1시. 비로소커피에서
14일 오후에 한가롭게 카페에 앉아 밥벌이 글이 아닌 글을 끄적이고 있다?
월간지 기자라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걸 지금 내가 하고 있다. 때려치운 건 아니고 한 달 동안의 긴 휴가를 얻은 덕분이다. 물론 무급 휴가다. 무늬만 객원기자인 프리랜서에게 유급 휴가가 있을 리가. 이나마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선배가 허락한 거지 다른 기자들은 지금 외고 청탁 꽤나 하고 있을 거다.
잡지 일이란 게 그렇다. 매달 해야 할 내 몫이 있다. N분의 1을 해내지 못하면 동료들이 직접 기사를 더 쓰든 외고 청탁을 맡기든 내가 채우지 못한 분량을 채워야 한다. 내가 매달 20페이지가량 쓰니까 아마도 이번 달은 나머지 기자들이 한두 꼭지씩 더 배당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민폐일 줄 뻔히 알면서도 휴가를 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랑하는 1호기에게 일이 생겼다. 몇 달 동안의 고민 끝에 고소를 진행하기로 했고, 문제를 해결할 물리적인 시간과 내 마음을 수습할 정신적 여유가 필요했다. 비록 예상보다 수사 진행이 더뎌 할 일들을 다 해치우지 못하고 복귀해야 하지만, 그래도 한 달 괜히 놀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단 1호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건 큰 수확이다. 그동안 나는 집에 있어도 내가 정한 6시 퇴근 시간 전까진 책상 앞을 마음 편히 떠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와 마주 앉더라도 대화에 푹 빠져 맞장구쳐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마감 때는 아예 출근을 했으니 그 버석한 대화시간마저도 갖지 못했다. 아이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늦게라도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시간을 가져서 다행이다.
일에 대한 마인드도 리셋됐다. 일하는 게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한 달을 놀아보니 ‘아, 나는 일을 해야 하는 팔자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교하는 아이의 책가방을 받아주고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 경력이 단절됐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2호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와서 다시 데리러 가기 전까지 밥도 먹지 않고 내리 대여섯 시간을 잤다. 나중에 정신과 교수님들 인터뷰를 하다가 안 사실인데, 그때의 나는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무기력함, 대인기피, 불안,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과 이유 없는 분노. 매일 조금씩 시들어가다가 다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다. 내 이름이 어딘가에 남겨진다는 게 그저 좋았다.
그런데 요 몇 개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나는 다시 고장이 나고 있었다. 툭하면 눈물이 났다. 퇴근길 혼자 걸으며 울고, 대낮 청소기를 밀다가 울고, 두 아이 싸움을 말리다 울고, 엄마가 보고 싶어 울었다. 물론 밖에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티가 난 모양이다. 대학교 친구 L은 밝은 (척하는) 내 말투에서 어쩐지 예전 모습이 떠오른다며 만나자 했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실천하는 사이다. 먼저 약속을 잡는 일이 거의 없는 L은 나를 불러내 맛있는 걸 사 먹이고, 같이 눈물을 흘려줬다. 데이트하는 연인들 가득한 맛집에서 함께 울어주는 친구가 있는 삶이라니 아주 엉망진창은 아니네.
아이의 심리상담 선생님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일을 수습하는 과정 자체가 아이에게 중요한 상처 치료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옹이 없는 나무는 없다. 옹이는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나올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무늬다. 우리 가족은 가지를 뻗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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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오늘도 희망회로를 가열차게 돌려본다. 그러니까 오늘의 글은 다짐이다. 아주 최악은 아니라고, 다 잘 될 것이고 잘 되게 할 것이란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