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서 여분의 방이 하나 생겼다. 취미가 많은 아버지의 악기방이 되었다. 그러다 겨울이 되어 밖에 내놓은 엄마의 화분들이 하나씩 담겼고, 자칫 녹슬까 애지중지 아끼던 악기들은 바람 잘 드는 옥탑방으로 이사를 갔다.
다시 봄이 됐을 때, 겨우내 돌보던 화분이 마당으로 나가고, 마침내 엄마의 방이 되었다. 머금은 물기가 바닥에 스며들어, 옅은 지하실 냄새가 서늘하게 깔린 온기 없는 방. 다른 악기들이 하나씩 이사 갈 때도 오랫동안 방을 지키던 낡은 피아노 옆으로, 목공을 취미로 하는 아버지의 기다란 습작 책상을 하나 놓았다.
누나를 낳은 나이 스물셋, 임신 중에 임용을 준비해 졸업하자마자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항상 바쁘고 일렀던 엄마의 시간이 이 작은 방 앞에 멈춰 선 듯, 멍하니 침묵을 지키던 엄마의 한마디.
“생각해 보니까, 혼자 방을 써보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재작년, 첫 해외여행을 가던 엄마의 표정이 보였다. 머리가 커갈수록 남들과 비교하며 내가 받지 못했던 것들만 속으로 불평하다 크게 싸우던 날이면 참지 못해 터져 나오던 남들은, 남들은. 그럴 때마다 죄지은 사람처럼 묵묵히 입을 다물던 엄마. 내 방도, 해외여행도, 나보단 어렸던 소녀의 기나긴 침묵 속에서 나왔다는 걸, 몰랐다기보다 그 부담에 더 큰소리를 악악 질러대던 거였다.
뭐라도 좋으니, 작은 선물. 방 앞에서 곰곰이 머리를 굴리던 엄마에게 어울리는 선물. 거실을 가득 메운 엄마의 책장이 생각나 코팅된 꽃갈피 하나를 샀다. 쉼표. 책 사이 멈춰 선 곳을 표기하듯, 엄마의 안식처가 될 곳. 고민이 많은지 이틀이 지나도 아직 그대로다. 피아노, 책상, 임시로 가져다 놓은 주방 의자. 그러나 곧 눈에 띈 액자 두 개.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아빠, 엄마, 누나, 나. 틀에 제대로 맞지도 않아 빈 공간 여백이 함께 담겼다.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자신의 사람들을 먼저 담았다.
이른 아침, 넓게 펴진 창문 사이로 막혔던 햇살이 기울 듯 들어섰다. 엄마의 취미를 하나 만들어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앞으로도 더 따듯한 온기가 방 안에 가득 차도록, 더 많은 엄마의 것들이 이곳에 모이도록.
가져온 꽃갈피를 여백에 담았다. 방을 나서며 의자에 앉아 액자를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그렸다. 이젠 이 공간이 엄마에게 제법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