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 선생님은 수능 국어를 가르쳤다. 7시부터 9시 두 시간. 고작 네 명 있는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울에서 이곳까지 왕복 네 시간을 매번 지각 한번 없이 오가셨다. 그의 열정의 반비례 하는 것처럼, 나는 수업 중 자주 졸음에 빠지곤 했는데, 그래서 처음엔 다른 집중할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떨까 싶어 건넨, 그런 무심한 읽을거리라 생각했다. 선생님은 정말로 무심한 듯 건네고, 또 무심한 듯 그 글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때 건넨 그 글이 그가 고심해서 쓰고 있던 습작인 걸 알았다면, 조금은 다르게 읽었을까. 주인공이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첫 문단에 담긴 노곤함에, 결국 그 위에 엎어져 잠을 자버렸다. 소설을 쓰신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 말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의 무게를, 나도 공감할 수 있을 때였는데.
훗날 소설과 수능 국어의 괴리감이 좁혀질 때쯤, 그 둘 사이의 그어졌던 명확한 경계선이, 단순히 수단과 목적으로 이해될 때쯤, 그의 꿈이 담긴 소설집이 교보문고 신간에 전시되어 있었다. 오랜 기간이 지난 만큼, 못다 한 얘기를 꾹꾹 눌러 담은 것처럼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다. 첫 단편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읽었는데, 선생님의 그 시절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분명 다채롭던 표정이었는데, 가끔 어딘가 생기 없는 웃음이 금 간 가면처럼 얼굴을 가로지르던 순간들. 그땐 그게 그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걸, 수단 안에서 또 필요한 수단을 쓰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줬는데, 이제 와서 그의 문장에 담긴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목소리들을 마주하니, 어쩌면 약하고 때론 못난 마음들을 조금이라도 감추고자 열심히 애쓰고 애쓰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지레 사람을 겁주고 조종하는 것처럼, 변한 것 없는 세상에서도 마구 요동치는 그 마음을, 시선이라는 틀 안에 열심히 끼워 맞추고자 발버둥 치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특별함을 신기해하고 동경하던 그 시절의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의 책들이 하나씩 발간될수록, 어느샌가 나도 평범함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멀어질까 더 발버둥 치고 애쓰면서, 그때의 선생님처럼 무심한 듯 곧잘 웃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특별해질수록, 나는 점점 평범해졌다.
여전한 건 우리의 거리였다. 언젠가 그의 마음이 조금은 헤아려졌던 것처럼, 그와 등지고 걸어가는 이 길이 수평선 너머에서 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이리저리 깨지고 구르면서, 당장은 보이지 않는 그의 등을 천천히 뒤쫓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이 마음이, 꾹꾹 가면 뒤에 숨겨왔던 마음이, 결국은 그와 같이 반짝이는 별의 상처 많은 뒷면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소설을 쓴다고 선생님에게 말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세세하고 꼼꼼한 답변을 받아들던 그 순간이, 우리가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 처음으로 함께 마주 선 순간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