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리뷰… 큼큼한 지하실 냄새가 관객들의 후각을 자극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반지하에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기택은 기우(최우식)가 명문대 졸업장을 위조해 동익(이선균)의 집에 과외 자리 면접을 보러 갈 때도 아들을 꾸짖기는커녕 너털웃음을 지으며 응원했다. 결국 기우를 시작으로, 기정(박소담), 기택, 충숙(장혜진)은 차례로 동익의 집에서 일하게 됐다.
영화 '기생충'의 초반부는 기택의 가족들이 동익의 집에 기생하는 과정을 가볍게 그렸다. 동익의 부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처럼 기택의 식구들 행동에는 아무런 거리낌은 없었다. 잘 짜인 각본에 맞춰 움직이듯 기택의 가족들은 천천히 동익의 집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에 소외된 인간'이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생충'은 기택의 가족을 사회, 경제적인 약자로만 다루지 않았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이들의 또 다른 단면을 한 꺼풀 들췄다.
한없이 긍정적인 줄로만 알았던 기택은 고단한 일을 겪은 뒤 아들에게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라고 나지막이 고백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됐든 아무 계획이 없다면 실패할 일도 없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것이 누구를 해할지라도 말이다.
이 고백은 유쾌했던 기택 가족의 모습이 사실 부조리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부잣집 애들은 구김살이 없어"라고 말한 충숙의 말에는, 반대로 기택의 집에는 구김살이 가득하다는 걸 암시했다. 이 가족의 삶은 무계획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긍정이었다.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것처럼, 만족스럽지 않으면서 만족스러운 것처럼…. 기택 가족의 밝음에는 이러한 부조리가 담겨 있었다.
계획 없는 삶은 기우가 명문대 졸업장을 위조하든, 기정이 해외 유학생으로 남을 속이든, 자신과 부인이 운전기사와 가정부의 자리를 빼앗든 상관하지 않았다. 기택은 자식들의 계획에 충실하게 따라갔을 뿐, 그 결과들은 애써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당장 앞의 상황을 해결한다면야 결과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기택이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된 이유는 사업이 연달아 실패해서였다. 그 또한 남들처럼 번듯한 계획을 통해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거듭된 실패 속에서 빈지하로 숨어 들어온 기택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마지막으로 남은 끈을 부여잡기 위해서는 속이 텅 빈 행복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지하실은 기택 가족의 상황을 설명하는 공간이자 냄새였다. 볕이 잘 들지 않은 큼큼한 지하실 냄새는 기택이 만든 인위적인 행복에 금이 가게 했다. '될 대로 돼라지'라는 마음에도 한편에는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고 싶었던 기택은 "운전기사의 냄새가 선을 넘는다"는 동익의 말을 우연히 들었다. 냄새를 숨길 수 없는 듯이 기택에게 동익의 말은 현실을 다시 깨닫게 하는 순간이 됐다. 반지하에 꽁꽁 숨겨뒀던 분노가 세상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삶의 부조리는 반지하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행복하게만 보이는 동익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 가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교는 기택의 가족 표현처럼 '심플'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는 그는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일지언정 속 빈 껍데기 같았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쓰는, 항상 눈치를 보는 듯한 그의 자세는 행복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었다.
동익은 "그래도 사랑하시죠?"라고 되묻는 기택의 말에 자극받았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일꾼을 부리기 좋아하는 그는 아내에 대한 물음에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기택의 옷에 배인 반지하 냄새가 동익의 코를 찌르듯, 동익은 아내를 향한 사랑에 대한 질문에 흔들렸다. 동익과 연교 모두 인위적인 행복 속에서 살고 있었다.
기택 가족의 반지하처럼 동익의 잔디밭 또한 부조리한 삶의 공간이었다. 햇살 가득한 잔디밭은 행복을 약속하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깨질 수 있을 만큼 위태로운 장소였다.
이들의 예의는 끝내 냄새로 깨졌다. "가끔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냄새"는 동익과 연교가 코를 막을 정도로 심하게 두 사람을 자극했다. 기택의 분노를 유발한 반지하 냄새가 두 사람에게는 일꾼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행복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기생충'은 사회적인 계층의 양면성을 다루면서도 각자의 삶이 가진 부조리를 동시에 보여줬다. 완벽하지 않은 삶의 부조리는 반지하든, 잔디밭이든 볕의 양과 관계없이 어디에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