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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Aug 26. 2019

프라하, 동유럽에 취하고 느낀 숙취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 과거에 빚진 현재

 "도착해서 연락드릴게요." 여행 당일 부모님은 근처 공항버스터미널까지 차를 태워주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요즘 부쩍 자식들과 함께하려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뿌리치진 못했다. 15분 남짓 근처에 있는 공항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벌써 공항버스가 도착해 승객들의 짐을 싣고 있었다. "잘 다녀와"라는 부모님의 인사를 뒤로 한 채 동생과 공항버스에 탔다. 진한 이별의 인사는 할 수 없었다.


 11시간가량의 비행 끝에 프라하 바츨라프 공항에 도착했다. 동생이 미리 예약한 택시를 타고 프라하 시내로 이동했다. 말총머리에 유쾌한 택시 기사 분은 프라하 도심에 들어서자 "저기가 카를교야"라며 곳곳을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운전하기 위험해" "어디서 왔니?" 등 지루할 새 없이 말을 걸어주셔서 기분 좋게 숙소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택시비 거스름돈을 확인하니 체코 돈인 코루나가 아닌 영국 1 파운드짜리 동전이 섞여있었다. 코루나 동전 속 1파운드 동전에서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꼈다.


프라하성 야경


 프라하 숙소는 호텔 레지던스였다. 작지 않은 방에 싱글 배드 2개가 있는 아주 적당한 크기였다. 간단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게 취사가 가능했고, 세탁기도 있어서 여행 기간 동안 잘 썼다. 레지던스는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에어컨이 없었다는 것이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도 아직 식지 않은 낮의 열기가 그대로 있었다. 창문을 최대한 열어놓고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더위를 식혀야 했다.


카를교를 지나가는 트램 안에서


 한국은 이미 새벽 시간이 됐지만, 프라하는 이제 막 저녁이 됐다. 장시간 비행에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으나 아쉬운 마음에 길을 걸었다. 시차 때문인지 몽롱한 상태로 다니다 보니 그제야 한국을 벗어나 낯선 곳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1시간쯤 걸었을까. 지치기도 하고, 배가 고파서 카를교 근처의 테라스가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간단하게 소시지, 튀김 요리와 맥주를 마시며 해가 뉘엿뉘엿 지는 프라하를 감상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 만난 프라하는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많구나' 정도였는데, 곳곳에 조명이 비추기 시작하자 프라하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맥주가 한 잔씩 들어갈 때마다 술에 취하는지, 프라하 풍경에 취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성 비투스 대성당


 다음 날에는 프라하성부터 둘러봤다. 프라하성은 코스마다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달랐다. 성 비투스 대성당, 구 왕궁, 성 이르지 바실리카, 황금소로, 달리보르카 타워를 볼 수 있는 B코스 티켓을 끊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외관부터 웅장했다. 9세기에 바츨라프 1세가 교회 건물을 지은 후 11세기에 로마네스트 양식으로 재건축됐고, 14세기 카를 4세가 고딕 양식으로 새로 지으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프라하, 체코와 관련된 역사적인 이야기 중에 카를 4세가 많이 등장한다. 카를 4세는 보헤이마왕,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체코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오전 내내 프라하성을 둘러본 뒤에는 존레논 벽과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에 들렀다.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욕심을 내서 방문한 곳이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이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심판' 등을 감명 깊게 읽어서였다. 박물관 입장료는 풍족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금액으로, 예상보다 꽤 비쌌다. 프란츠 카프카의 일대기를 기록한 듯한 박물관은 검은 톤으로 꾸며져 있었다.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일기 등을 통해 그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그중 "The life of society moves in a circle. Only those burdened with a common affliction understand each other"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글은 인상 깊었다. 그러나 여행자들에게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을 추천하지는 못할 것 같다. 에어컨 시설이 없는 박물관은 무척이나 더웠고, 무엇보다 한글 가이드가 없어서 모든 내용을 그대로 이해하기는 한계가 있었다.


체코의 대표적인 음식 꼴레뇨


 이번 여행에서는 동생 덕분에 끼니마다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을 먹었다.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꼴레뇨다. 돼지 족발과 비슷한 메뉴인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포크로 쉽게 찢어질 정도로 육질은 촉촉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내 식성에 딱 맞았다. 여행의 '먹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음식이다. 꼴레뇨에 곁들여마신, 거품이 인상적인 벨벳 맥주도 일품이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들어간 음식점에서 정말 맛있는 꼴레뇨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다. 참고로 체코에는 서빙하는 직원에게 5~10% 팁을 해주는 문화가 있다. 맛도 좋고, 직원 분도 친절해서 10% 가까운 팁을 음식 값과 함께 지불했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오후에는 프라하의 구시가지 쪽을 찾았다. 프라하는 크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구시가지 광장에 이르렀을 때는 흐리던 하늘이 때마침 화창해졌다. 옛 건물들이 광장을 감싸고 있는 듯한 광장은 아늑했다. 광장 중앙에는 비눗방울을 만드는 분이 계셨는데,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됐다. 어린아이들이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는 장면들이 햇살과 어울리며 광장을 수놓았다. 이후에는 화약탑 등 주변을 산책하듯이 둘러봤다.


코젤 직영점에서 맛 본 흑맥주와 타르타르


 여유 있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지만, 비교적 짧았던 프라하 여행 탓인지 쉴 틈 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 때가 됐다. 이날 저녁은 코젤 직영점을 가기로 했다. 카를교 근처에 있기도 했고, 숙소에서도 멀지 않아서였다. 여행 전부터 체코 맥주를 많이 마실 생각이었으므로 코젤 직영점이 알맞았다. 코젤 직영점에서 마신 코젤 흑맥주는 유난히 시원했고, 뒷맛이 깔끔했다. 여행의 피곤함은 흑맥주 한 모금만으로도 말끔하게 씻겼다. 타르타르도 기대 이상이었다. 딱딱한 빵에 생마늘을 비빈 후 익히지 않은 소고기와 먹는 타르타르는 맥주 안주로써 제격이었다. 한국 분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종업원 분들이 친절하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하는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프라하성의 밤


 프라하에서는 4일 동안 머물렀으나 하루를 통째로 여행한 건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다. 프라하에 도착한 날과 프라하 근교인 카를로 비바리, 체스키 크롬로프 여행한 날은 저녁이 돼서야 프라하를 둘러볼 수 있었다.


  프라하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시간이 멈춘 듯 건물들이 잘 보존돼있고, 밤이면 골목에 있는 건물들까지도 조명을 받아 자랑하듯 존재를 뽐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곳곳에는 관광객들이 넘쳤다. 덕분에 고풍스럽고도 활기찼다.


 하지만 프라하 여행을 마무리할 때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프라하는 과거가 현재를 이끄는 도시였다. 골목 건물도 치장을 위해 조명을 받는 건 프라하의 현재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동유럽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관광객들이 동유럽에 취하게끔 하지만, 결국에는 찬란했던 지난날에 대부분을 빚진 도시였다. 프라하를 돌아다니며 흠뻑 빠져 도시를 즐겼지만, 그곳을 떠날 때는 숙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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