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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Aug 22. 2019

후배 퇴사를 대하는 나의 자세: 조금 질척이는 편

'쿨한 이별'을 하게 될 때가 오면 마냥 좋기만 할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전날 자신의 바로 위 선배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신입 후배가 말을 걸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는 오후 시간을 깨우는 말이었다.


 "저…많이 고민해봤는데…."

 아뿔싸. '고민' 그것도 '많이 고민'이라는 말로 후배가 대화를 시작한다면 열에 아홉은 퇴사 이야기다. 후배 둘이 심각하게 대화를 하던 모습을 우연히 보고는 걱정됐지만, 곧바로 퇴사 소식을 전할 줄이야.


 "그렇게 됐습니다."

 올해 1월 인턴으로 들어온 후배는 4월부터 정직원이 돼서 일했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마친 후배는 한국에 들어와 이 회사에 지원해 처음 면접을 봤다. 나 또한 인턴 채용이긴 하지만, 처음 면접관으로 참여해 후배와 인연이 닿았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첫 면접인 셈이었다.


 "죄송합니다."

 후배는 쉬면서 대학원 공부나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후배가 입사한 후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후배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왔다. 후배가 죄송할 게 아니라 내가 미안한 일이었다.


 "한두 달 출근하면서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안 될까?"

 잠깐의 침묵 이후에 내가 입을 뗐다. 직장 상사에게 '퇴사'라는 말을 꺼내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테다. 하지만 난 이번에도 이별 앞에 질척이는 연인으로 변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작은 기대를 걸어봤다.


 "더 생각해보고, 내일 실장님께 말씀드릴게요."

 '조금 더 출근해보면서 더 생각해보자'는 내 말에 곧바로 후회했다. 후배를 위해서는 아쉬움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되 부담은 주지 말았어야 했건만…쿨한 이별을 못하는 나를 원망했다.  




 후배가 퇴사를 이야기했던 2달 전에 써놨던 글이다. 후배는 며칠 후 실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사직서를 냈다. 사직 절차는 단숨에 진행됐다. '퇴사하는 직원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상사들의 의견이었다. 그래도 후배가 끝까지 자신의 몫을 마무리해줘서 고마웠다. 이보다 더 이상 선배로서 바랄 게 있을까 싶다.


 퇴사를 하루 앞두고 후배가 편지를 써줬다.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글들이 이어졌다. 중간에는 '희생해주신 덕분에…'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나쁜 뜻은 아니었겠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2013년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세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다. 첫 직장은 규모가 작은 신생 회사였다. 그곳에서 운 좋게도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선배·동기 4명이 모인 메시지 방이 있다. 여전히 하루 종일 소소한 일부터 직장 스트레스까지 대화를 나누며 지낸다. 입사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사회에서 만난 정말 특별한 인연이었다.


 두 번째 직장은 꽤 큰 회사였는데, 팀의 대부분이 선배였다. 내 나이가 차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나이도 올라갔는데, 팀에 결혼하신 분들이 많았다. 선배들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돌보기 바빴다. 첫 회사의 인연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성향이 잘 맞는, 비슷한 나이대가 모여서였던 것 같다.


 지금 회사에서는 후배들이 더욱 많아졌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문뜩 대학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후배들과의 나이 차이를 실감한다. 이제는 주변 동료들이 떠나는 것보다 후배들이 떠나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동안의 회사의 생활을 뒤돌아보면, 후배는 항상 있었다. 그리고 이별도 있었다. 주로 당사자는 후배 혹은 나였다. 첫 회사에서는 2년 차가 된 내가 막내 후배를 붙잡기도 했다. 지금은 '왜 그랬을까' 싶다. 선후배들에 대해 '직장 동료'라기보단 '전우'라는 느낌을 나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듯하다. 물론 모든 선후배에게 그렇게 대하진 못했지만….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갈아먹으면서까지 그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희생'을 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공간에 있어도 결국에는 사람이 만나는 장소라는 마음이 컸다. 선후배가 밉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될 때도 많다. 하지만 피를 나눈 가족들끼리도 싸우는 데 직장 동료들과 항상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인연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내가 회사 후배의 퇴사를 대하는 자세는 조금 질척이는 편에 속하는 듯하다. 후배들의 퇴사를 받아들이는 것도 경험인지, 이제는 익숙해지기도 한다. 시간이 더 지나 후배가 회사를 떠날 때 아무런 느낌이 없게 되면, 그날 집으로 가는 길은 울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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