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파를 견디게 해준 야채 곱창
서울의 한복판, 고단했던 부모님의 삶
하늘에 닿을 만치 커다란 잿빛 아파트 아래에는 새까만 아스팔트가 깔려있었다. 차들이 밤새 내달리던 고가도로는 이 둘의 경계를 구분 지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 청계천 8가 삼일아파트. 지방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은 나와는 3살 터울인 동생이 태어나기 전 서울로 올라와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와 곳곳에 판잣집이 있던 이 동네는 내 기억의 시작점이자 내 고향이 됐다.
어렴풋한 순간들을 더듬어보면, 청계천 주변에는 물건을 파는 상인 분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유치원도 시장 안에 있었을 정도로 그 시절 청계천 주변은 주거와 상업 공간이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장 구경을 하다가 만화 비디오를 빌리거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던 일들은 아직도 마음 한편에 그대로 남아있다.
황학동 중앙시장에는 길을 따라 일렬로 줄 세워진 돼지 곱창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어머니는 이따금씩 장을 본 후 야채 곱창 한 봉지씩 포장 주문을 해서 집으로 가셨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얇은 하트 모양의 곱창에 양배추, 대파, 양파, 깻잎 그리고 당면이 어우러진 야채 곱창은 뒤집개가 철판을 치는 소리와 버무려졌다. 포장마차에 앉아 노릇한 냄새와 함께 완성되는 야채 곱창을 기다리는 건 지루할 틈 없었다.
야채 곱창은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져 포장됐다. 어머니가 비닐봉지를 들고 다시 길을 재촉하실 때면, 나는 호기심에 검지 손가락으로 비닐봉지를 콕 눌러보기도 했다. 물컹하게 들어가는 촉감을 타고 전달되는 야채 곱창의 따뜻한 기운은 사람의 온기와 다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봉지에서 꺼낸 야채 곱창은 식욕을 당겼다. 야채 곱창은 곱이 가득 찬 곱창으로 요리하는 곱창 구이와 달랐지만, 매콤한 양념의 곱창을 씹으면 금세 입 안에서 고소한 맛이 터졌다. 야채를 곁들이고, 쫄깃한 당면을 곱창과 먹을 수 있는 야채 곱창은 별미였다.
당시 청계천은 위치상으로는 서울의 중심이었으나 모여있는 이들의 삶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삼일아파트는 청계천 판잣집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주용으로 제공했던 아파트로, 196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인 1990년 초까지 살았으니 이미 그때에도 노후한 아파트였다. 현재 삼일아파트가 철거된 자리에는 브랜드 아파트가 지어졌다. 아스팔트로 덮여있던 청계천도 복원 사업을 통해 정비됐다.
우리 집은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인 7층이었는데,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난방도 연탄으로 하는 방식이어서 공동 복도 중앙에는 연탄을 쌓아놓는 창고가 있었다. 밤이 되면 쥐들이 벽을 뜯거나 심지어 쥐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발자국 소리도 났다. 덕분에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쥐를 잡는 끈끈이를 설치하셨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쥐가 바둥거리는 모습도 봐야 했다.
아버지는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셨다가 집에 돌아오시면 청사초롱 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하셨다. 아버지가 청사, 홍사를 알맞은 크기로 재단하신 뒤 어머니는 미싱기로 청사와 홍사를 이어 붙이셨다. 두 분이 바쁘실 때는 '드르륵' 하는 미싱 기계 소리와 청색과 홍색 원단이 방 안을 채웠다. 청사초롱은 누군가에게 함맞이를 할 때 쓰였고, 우리 가족에게는 생계에 도움을 줬다.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잠들었을 때 포장마차에 가서 곱창에 소주를 드셨다고 한다. 이제 막 자라고 있는 두 자식을 키우는 젊은 부부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을까. 지방 출신의 부부는 의지할 곳 없는 서울 한복판의 작은 포장마차에서 고단한 삶을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냈다. 이제 그때의 부모님 나이쯤 되고 보니 삶을 지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
우리 가족은 몇 년 전부터 설, 추석 연휴에 삼일아파트가 있었던 주변을 둘러보고, 중앙시장의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먹는다. 부모님은 지금은 주인이 바뀌거나 건물이 없어진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탱글한 곱창을 씹으면 풍족하지 않았던 그 시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시간이 흐른 장소에는 젊음을 바친 부모님의 추억이 서려있고, 그들의 애정을 먹고 자란 자식들이 있다.
"옛날에는 넷이서 2인분도 충분했는데, 이제는 4인분도 모자라네."
아버지는 매번 청계천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먹을 때마다 같은 말을 하시며 미소를 지으신다. 나와 동생은 "항상 같은 말을 하시느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곳에서 이제는 서른이 넘은 아들, 딸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것 같다.
"곱창은 여기처럼 연탄불에 구워서 먹는 게 맛있지."
내 기억 속의 곱창은 야채 곱창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청계천 곱창은 연탄불에 구운 곱창 구이가 유명했다고 한다. 연탄불로 구운 곱창은 그 특유의 향이 있다. 기름진 양념 곱창에 연탄불이 더해지면 곱창이 지닌 풍미가 살아난다. 연탄불에 구우면 불 조절이 쉽지가 않은데, 불에 그을린 부분을 먹어도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때로는 아들의 손을 잡고, 때로는 부부가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 가족은 돼지 곱창과 세상의 풍파를 견뎠다. 누군가에게는 곱창이 하찮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소중한 음식이다. 올해 추석에도 앞으로 있을 날들을 약속하며 가족들과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먹을 생각을 하니 허기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