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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Sep 15. 2019

렌터카로 폭우를 뚫고…가자, 할슈타트로

우리는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기원했다

 '유럽 전원 풍경은 어떨까.' 이 단순한 상상 때문에 난생처음 렌터카를 빌린 장소는 유럽이 됐다. 여행 전 체코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던 중 불현듯 떠오른 렌터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는 건 끝없이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와 폭우였다. 어느덧 '환상적인 유럽 렌터카 여행'의 꿈은 '무사 도착'의 목표로 변해있었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로 이동하는 날, 아침 일찍 프라하 시내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했던 업체는 렌트 플러스였다. 렌터카 업체 영업 시작 시간인 오전 8시에 맞춰 도착한 지점에는 프런트 직원 2명, 렌터카를 인도해주는 직원 3명이 있었다. "렌터카 예약했는데요"라는 짤막한 영어로 인사를 대신하자 "예약 바우처 주세요"라며 직원이 안내했다. 그 이후 여권, 운전면허증, 국제운전면허증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도와준 렌터카


 친절한 직원 덕분에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서류 작업을 끝내고, 렌터카를 인수받으러 갔다. 인터넷에서 예약한 차량은 폭스바겐 폴로였지만, 스코다 파비아를 받았다. 예약하고, 실제 받은 차는 달랐지만 비슷한 크기의 차여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시동을 걸기 전에는 반납할 때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기존 파손 부분이 있을까 싶어 차량 전체를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었다. 미리 준비한 휴대폰 거치대까지 설치한 후 출발 준비를 마쳤다.


 운전대를 잡자 손바닥에 땀이 났다. 렌터카 운전이 처음인 데다가 운전석에 앉은 곳은 프라하 시내 한복판이었다. 더구나 차를 몰고 다시 동생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에 갈 생각을 하니 앞이 까마득했다. 프라하는 자동차와 같이 도로 위를 달리는 트램이 있었고, 차도 곳곳이 돌바닥이었다. 불현듯 접촉 사고가 나서 당황해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미 돌이킬 수 있는 건 없었다. '서울에서도 무사고를 자랑하는 운전자가 아니더냐.' 한국의 도심보다 운전이 힘들리 없다는 자기 최면과 동시에 악셀을 밟았다.


할슈타트 풍경


 작은 길목에 있던 렌터카 주차장과 회전교차로를 빠져나왔다. 도로에 들어서자 마음이 놓였다. 작게 콧노래도 흘러나왔다. 구글 내비게이션을 따라 15분을 운전해 숙소에 도착했다. 동생은 캐리어 두 개를 양옆에 두고 숙소 앞 길거리에 서있었다. "사고 나면 어떻게 하나 했다니까." 조수석에 앉자마자 동생도 한시름 놓였다. 동생은 나보다 더 걱정한 듯했다.


 4시간 20분. 구글 내비게이션은 프라하에서 할슈타트까지 운전하는 시간을 알려줬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할슈타트에는 외부 관광객이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2곳이 있다. 오후 시간이 되면 만차가 된다고 해서 되도록 빨리 도착해야 했다. 하지만 하늘은 내 마음을 몰라줬던 것일까. 아침에 맑았던 하늘은 남쪽을 향해 달려갈수록 어둑해졌다. 간간히 빗방울이 내리더니 어느새 폭우가 쏟아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는 체코를 떠나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폭우가 내리는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


 고속도로를 제외하면 왕복 2차선 시골길이 대부분이었다. 앞에 트랙터나 목재를 실은 대형 트럭이 있을 때는 꼼짝달싹을 못했다. 폭우는 쏟아지고, 도착지는 멀기만 하고…. 렌터카 운전은 처음이어서 한순간도 한눈을 팔 새도 없었다. 여기에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에서는 통행권인 비넷도 구입해야 했다. 국경을 넘어 한참을 헤매다가 주유소에서 10일짜리 비넷을 샀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보던 아름다운 유럽 전원 풍경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부디 할슈타트에 남매가 잘 도착할 수 있길'이라는 바람만 남았다.


 50분. 할슈타트 도착이 1시간 이내로 접어들었다. 동생이 틀어준 핸드폰 음악을 응원가 삼아 운전할 때쯤 알프스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와…." 시야를 채우는 것도 모자랄 만큼의 웅장한 산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할슈타트가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기대감은 힘을 북돋았다. '폭우도 내 앞길을 막지 못하리라.' 왠지 모르게 결연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빗방울은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할슈타트 유람선 선착장


 힘겨운 사투 끝에 할슈타트에 도착했다. 역시나 주차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주차장 차량 안내판에는 'FULL'이라는 단어가 빼곡했다. 그럼에도 희망을 안고 일단 주차장을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우리 앞에는 자동차 1대만 주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슈타트 주차장은 정해진 차량 수만큼 들어갈 수 있었다. 주차장을 나가는 차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는 동전 모양의 노란색 티켓이 있었는데, 나갈 때 기계에서 티켓을 넣고 정산을 하면 됐다.


 몰아치던 비는 그쳤다. 동생과 나는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비가 다시 내리기 전에 얼른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할슈타트는 드넓은 호수 주변의 작은 마을이다. 체코 카를로 비바리 여행처럼 이제 비는 불청객이 아니었다. 알프스 산맥과 호수, 그리고 비가 어우러졌다. 비구름이 잔뜩 끼어 알프스 산맥은 반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반은 되레 빗방울이 채워주고 있었다. 평소에 비를 좋아해서인지 비 오는 할슈타트도 좋았다. "어, 오빠 또 비 온다." 유람선에서 여행을 만끽할 때쯤 비는 또 쏟아졌다.


 1시간가량 유람선 관광을 끝내고 동생과 나는 선착장 앞에 있는 케밥집을 갔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먹은 게 없었다. 케밥집에 마련된 야외 벤치에 자리를 잡는 사이, 동생이 케밥을 주문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 속에서 케밥과 콜라 한 캔씩을 먹었다. 운치 있던 비도, 끼니를 때울 때는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케밥을 다 먹었을 때쯤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 구경할까?" "아냐, 난 다 봤어." 내 말에 동생이 곧바로 대답했다. 할슈타트가 워낙 작아서 그랬기도 했지만, 둘 다 '맞을 비는 다 맞았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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