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여행은 기간이 짧았지만, 시간과 반비례하게 우리 남매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체코 프라하를 벗어나 만난 빈은 거리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했다. 프라하가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했다면, 빈은 은은하게 유럽 역사가 물들어있었다. 오스트리아 빈 궁전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가운 과거의 인물들과 만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할슈타트에서 비를 뚫고 빈에 도착하니 벌써 늦은 밤이 됐다. 길 중간에 핸드폰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30분 정도를 허비했다. 우리에게 빈에서 남은 일정은 오늘과 내일, 단 이틀뿐이었다. '일찍 도착해 빈의 야경을 감상하겠다'라는 나름의 계획은 장거리 운전 거리만큼 멀어져만 갔다. 가까스로 사전에 알아뒀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숙소인 인터시티 빈에 도착했다.
힘이 쫙 빠진 상태로 방에 도착하자 말할 기운도 없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빠 힘들지? 오늘은 그냥 저녁만 먹고 숙소에서 쉴까?" 프라하에서 할슈타트, 그리고 빈까지 8시간 운전을 하루 만에 소화했던 내가 걱정됐는지 동생이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아냐, 괜찮아." 여행의 흥이 깨질까 봐 거듭 괜찮다며 미소 지었다. 10분 남짓 지났을까. 조금 누워있었다고 그나마 힘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나가자. 시간이 아깝잖아." 우리는 숙소가에 온기가 채 채워지기 전에 빈의 여행을 시작했다.
인터시티 빈을 숙소로 선택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유료이긴 했지만, 렌터카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었고, 인터시티 빈에서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제공해서였다. 무료 티켓 덕분에 빈 안에서 지하철, 트렘 표를 끊을 걱정 없이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대중교통비를 아끼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빈의 여기저기를 보려고 했는데, 숙소 선택은 탁월했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슈테판대성당이었다. 빈 시내의 중심이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결혼식, 장례식이 치러진 곳으로 유명한 장소였다. 슈테판대성당에 도착한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조명이 다 켜진 거야?" 동생이 물었다. "응, 그런가 봐." 눈부신 슈테판대성당의 모습을 기대했으나 첫인상은 상상과 달랐다. "읍, 이게 무슨 냄새야?" 침묵을 깨는 동생의 목소리는 나의 후각을 자극했다. "으악, 말똥 냄새 같은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곧 우리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여행 블로그나 SNS 사진 속에서 보던 슈테판대성당과의 첫 만남 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대화였다. 서로 얼굴을 보며 웃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알고 보니, 그 냄새의 정체는 말의 오줌 냄새였다. 슈테판대성당 앞에는 유명 관광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말이 끄는 마차가 있었다. 그곳에서 쉬던 말들의 흔적이었다. 슈테판대성당을 직접 보고 당황스러웠던 건 눈부신 조명을 받던 프라하의 건물들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서였다. 시간이 지난 후 유난스러운 조명으로 꾸민 프라하의 건물보단 수줍은 듯한 빈의 건물 조명이 매력 있었다. 빈은 그런 도시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동생과 쇤부른 궁전으로 향했다. 쇤부른은 18세기부터 1918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다. 전날 운전을 하고 숙소로 오다가 봤던 쇤부른 궁전의 야경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칠흑 같은 밤에 노란 조명을 받은 쇤부른은 말 그대로 샛노랬다. 낮에 본 쇤부른 궁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여행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오던 날씨도 운 좋게도 빈에서는 화창했다. 쇤부른 궁전은 높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중세 시대를 간직하고 있었다.
미리 끊어뒀던 입장권 시간에 맞춰 궁전 안으로 들어섰다. 여러 국가의 가이드가 마련돼 있어서 우리는 한국어 가이드 기기를 대여했다.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가이드 기기는 여러모로 편리했다. 이어폰을 꽂아 설명을 듣거나 외부 스피커로 이어폰이 없어도 가이드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궁전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다니….' 가이드 기기를 타고 흘러나온 일기장의 한 페이지는 귀를 잡아끌었다. 주인공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왕비, 일명 시시(sisi) 왕비였다.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을 거르거나 매력적인 긴 머리를 유지하려고 신경 썼던 이야기 등. '궁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뻔하겠지'라는 생각은 방을 지날 때마다 들리는 한국어 가이드 설명에 뒤바뀌었다.
방마다 시시 왕비와 더불어 합스부르크 왕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가이드 기기에 귀를 기울이며 흔적들을 더듬어 가는 경험은 이번 여행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개인적으로 도시의 유적이나 명소들에서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 편이지만, 빈의 궁전에서는 오래 머물게 됐다. 쇤부른 궁전 안에 있는 아담한 정원, 그 뒤로 펼쳐진 광활한 안뜰을 구경하느냐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쇤부른 궁전에서 시내 중심부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트램을 타고 벨베데레 궁전으로 이동했다. 벨베데레 궁전까지는 트램으로 약 20분 정도가 걸렸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의 일정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가능한 모든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체코 프라하까지 국제선 비행기를 탔고, 도심에서는 시내버스와 트램으로 이동했다. 프라하 근교 도시를 여행은 시외버스를 통해서 했고, 프라하에서 할슈타트 빈까지는 렌터카를 이용했다.
벨베데레 궁전에서도 쇤부른 궁전 때와 같이 한국어 가이드 기기를 대여했다. 이번에는 각자 신분증을 제출하고, 일정 금액을 내야 했다. '쇤부른 궁전에서는 무료였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궁전 안 미술 작품들을 보자 '충분히 돈값을 하는구나'라며 흡족했다.
궁전에는 층별, 공간별로 중세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어 가이드를 통해 친절하게 묘사됐다. 당대의 시대적인 요구와 전 세대의 미술에서 발전, 혹은 탈피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의 의도가 그대로 작품에 표현됐다. 그림 중에는 사진으로 찍어서 간직하고 싶었던 것들도 많았으나 1/4 정도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어 아쉬웠다.
빈 여행 전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연인(키스)' 원작을 볼 생각이 가득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인 데다가 두 남녀가 끌어안는 모습이 낭만적이고, 역동적으로 묘사돼 인상 깊어서였다.
막상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에곤 실레였다. 정돈되지 않은 듯한 굵은 선으로 표현되는 인물들에서는 다가가기 힘든 고독이 느껴졌다. 전시된 에곤 실레 작품 중 애인이 넘어질 듯한 자세로 위태롭게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죽음과 소녀'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미술작품에 관한 배경 지식이 높은 건 아니었으나 그림을 통해서 작가의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미술관도 한 번 가볼까?" 예정에 없었던 일정을 내가 불쑥 제안했다. "오, 좋지. 거기 에곤 실레가 그린 다른 그림들도 많대." 하지만 벨베데레 궁전에서 시간을 많이 쓴 탓에 미술관은 가지 못했다. 벨베데레 궁전을 나올 때 우리는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다시 슈테판대성당에 들렀다. 이제는 빈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탓인지 슈테판대성당의 풍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이후 트램을 타고 오페라하우스의 야경도 구경했다. 건물 곳곳에서 조명이 빛나는 오페라하우스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색색깔 조명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 빈은 프라하처럼 떠들썩하진 않았지만, 조용히 역사를 도시가 가슴으로 품고 있는 도시였다.
지난여름 여동생과 함께한 여행기를 끝냈다. '길지 않은 시간의 여행을 너무 장황하게 쓴 건 아닌지' 싶을 때가 많았다. 막상 글로 당시의 마음이나 상황들을 옮겨놓으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2개월이 넘었는데, 일상에 지쳐 퇴근할 때 가끔씩 동생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당시 여행을 추억한다. 체코, 프라하는 팍팍한 일정으로 지치는 순간도 있었지만, 소중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여행 취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한 동생과 함께해서 행운이었고, 그래서 더욱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