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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Dec 11. 2019

술, 애증의 그 이름

스무 살 아찔했던 술의 기억

 태어나서 술을 제대로 마셨던 첫 기억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능이 100일 남았던 날, 아버지는 저녁을 먹다가 처음으로 술을 권했다. "이 술 마시고 시험 잘 치러라." 당시 저녁 메뉴는 기억나지 않지만, 네 식구가 조촐하게 식당에서 외식하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식당 종업원에게 소주잔을 하나 더 달라고 하시더니 대뜸 잔을 건네주시고는 소주를 따랐다. "크으." 쓰디쓴 맛은 소주의 첫 기억으로 남았다. 


 사실 수능 100일주를 챙겨 마실 정도로 평소 학업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아무런 목적 없이 주변에서 입시 만을 부르짖는 수험 시절은 몸서리칠 만큼 싫었다. 누군가와 경쟁하고, 공부하는 것이 그다지 멋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한창 공부를 하려다가도 이내 그 길을 빠져나왔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공부나 대학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그날 건네준 수능 100일주는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조금이나마 자식에게 전달하는 도구였던 셈이다.


 그래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에 입학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는 아들이 더 좋은 대학교를 가기를 원하셨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교 입학식에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대학교 입학 사진에는 나와 동생, 어머니 만이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있다. 그래도 아버지는 굳이 내가 굳이 안 가도 된다는 대학교 졸업식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자식의 입학식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항상 있으셨던 것 같다.


 개강을 보름 앞뒀던 2월의 어느 날, 난생처음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참석했다. 서울은 물론 지방 곳곳에서 올라온 동기들과 처음 마주했다. "자 이번에는 게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지목하는 신입생들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사회를 보던 선배는 나중에 알고 보니 과 대표였다. 내가 지목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과 대표와 눈이 마주쳤고, 그의 손은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게임에서 진 쪽이 노래를 하거나 아니면 앞에 있는 밥그릇에 담긴 소주를 원샷해야 합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눈앞에 있던 사발에는 소주가 가득 채워졌다. 투명한 소주가 조금씩 사발에 채워질수록 내 가슴도 뛰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한다니.' 그 순간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으나 게임에서 보기 좋게 패배했다. 선배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행사장 안을 가득 채웠다. "무슨 노래를 부르시겠습니까."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소주가 채워진 사발을 들었다. 웃음은 함성으로 바뀌었다. 한 모금씩 술을 넘길 때마다 소리가 커졌다. 소주를 다 비우자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진 쪽이 장기자랑을 하던 상황에서 나 홀로 소주 사발을 들이켰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옆에 있던 선배가 "괜찮아? 술 잘 마시는구나"라고 말했다. '괜찮을 리가 있나요'라고 말을 뱉을 뻔했지만 그저 한 번 웃고 말았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랫배 깊숙한 어느 지점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박차고 올라왔다. 갑자기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선배들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지하철 화장실에 변기를 붙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신입생 시절 내내 술자리에 빠진 적은 없었다. 술보다 동기, 선배들과 어우리는 걸 좋아한 편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진 남과 별로 어울리고 싶어 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술 한잔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고, 눈치껏 상대의 농담도 맞받아쳤다. 


 그러고 보면 끔찍한 술 문화도 있었다. 복학한 선배가 일반 종이컵에 소주를 반을 채우고 이온 음료를 따라 한 잔을 만들었다. 이온음료와 소주가 섞인 술은 광고 문구처럼 물보다 흡수가 빨랐다. 그 선배는 후배들에게 그렇게 한 잔, 자신도 그렇게 한 잔 따르며 함께 마셨다. 요즘 대학교에서 그랬다면 인터넷 기사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고도 남았을 테다.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된 술 문화였다.


 돌이켜 보니 스무 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술을 마셨다. 주변에서 사고가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다. 그래도 진저리 나는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돈이 없어 친한 동기 형과 떡볶이를 사서 술잔을 기울이며 연애 상담을 받고, 시험이 끝나면 순댓국에 소주 한잔을 하는 맛도 있었다. 입대를 이틀 앞두고 후배들이 먼저 연락해와서 술을 사준 날도 추억이 됐다.


 요즘에는 업무적인 술자리가 있을 때만 술을 마시려고 한다. 무작정 술을 퍼마시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이 늘어난 탓도 있다. 내일 숙취에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이 술을 먹는다고, 가끔은 고삐 풀린 것처럼 술에 취하기도 한다. 술은 참 애증의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분 좋다고 한 잔, 나쁘다고 한 잔….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술을 마시야지, 술이 나를 마시면 안 되는 것이다. 술, 이보다 더 좋으면서도 싫은 이름이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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