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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Nov 22. 2019

참 쓰다

달콤한 인생을 꿈꾸며

머물러 있던 기억은 덤덤하게 불쌍하게

그대 다시 불러 오네요 버렸는데 잊었는데 

맘을 다 쏟아 사랑을 하고 

다 쏟아 상처를 주고

다 쏟아 또 사랑을 하고

그게 참 쓰다 기억이 나니 

참 쓰다 내가 미우니

참 쓰다 보고 싶어서


-이승환 '3+3' 앨범 수록곡 '참 쓰다' 가사 中-




 퇴근 후 무장 해제된 밤 10시 9분에 올리는 핸드폰 벨소리는 더 요란했다. 수신자를 확인하니 다른 팀 차장님의 전화였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다른 업체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급히 확인 요청이 들어온 게 있어서요."

 "아! 잠시만요. 제가 확인한 다음에 메신저로 전달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놀란 마음은 요동쳤다. 심박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내가 실수한 게 있었나.' 

 당시 업무를 하나씩 되짚어보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늘 해온 업무라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과거를 향한 생각의 물꼬가 한 번 트기 시작하니 어느새 무장 해제됐던 마음은 전투태세로 돌변했다. 

 지나간 업무를 다시 들춰봤다. 업무를 처리한 후 중간 과정에서 변동이 생겼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에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 같은 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찌 됐든 벌어진 일은 알려야 했다.


 "선배 늦은 밤에 죄송해요." 

 일련의 과정을 전달하면서 내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게 느껴졌다. 흥분된 상태가 목구멍을 타고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러게 조금 더 확인하고 했어야지. 응? 무슨 말인지 알지?"

 업체 관계자와 미팅 자리에 있던 선배의 목소리는 정돈되지 않았다. 말을 가지런히 정리하려고 해도 곧바로 다시 술기운에 흐트러졌다. 밤 10시가 넘었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너무 술자리 데리고 다니는 거 같네, 오늘은 그냥 집에 가." 

 퇴근 전 선배의 말이 스쳐갔다. 둘 중에 한 명은 술자리에 없던 것이 다행이었던 건지, 그 반대인 건지 헷갈렸다. 




 "저런 건물만 있으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텐데, 그렇지?"

 오늘 낮에 회사 앞 5층짜리 상가 건물을 보던 선배가 말했다. 선배의 말에 내 시선은 건물 쪽으로 향했다.

 "그러게요." 

 기존에 있던 빌딩을 허물고 다시 지은 건물은 3개월째 공실이었다. '저 건물 주인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까?' 궁금했다. 

 "춥다. 들어가자." 

 선배는 며칠 전에 입었던 겉옷보다 더 두터워진 점퍼의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손에 들린 핸드폰에는 아직 창이 닫히지 않은 증권사 주식 거래 창이 떠있었다.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은 결국 늦은 밤 팀의 책임자에게 메신저를 통해 보고됐다. 

 '미안ㅠㅠ'

 '아녜요. 이렇게 될 일이 아닌데 이상하네요ㅠㅠ'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망설인 일을 밀어붙인 상사는 아닌 밤중에 사과했다. 하지만 내일이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결국 내가 그 책임을 다 떠안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무척이나 미안해하는 상사의 메신저를 보니 당장 마음은 좋지 않았다.  

 나도, 선배도, 상사도, 다른 팀 차장도, 얼굴 모르는 다른 업체 직원도 예기치 않게 불편한 밤을 보내게 됐다. 업무를 확인하려고 켜놓은 노트북 속 시계를 보니 밤 12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생 참 쓰다." 

 이미 잠이 확 달아난 상태였다. 이승환의 '참 쓰다'를 듣고 싶어 졌다. 인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고 쓰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하필 이별 노래라니.' 

 입가에 도는 씁쓸한 감정을 삼키는 데 문뜩 전 여자 친구가 떠올랐다. 7년 동안 묵묵히 옆을 지켜줬던 그녀가 그립고, 미안했다.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은 성격인 내가 그녀에게는 점심 메뉴며, 속상한 일이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며, 돌이켜 보면 수다스럽게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부모님보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그녀였다. 

 '그녀가 옆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했겠지.'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사람은 이기적인 것 같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더니…쓰디쓴 이별의 기억도 이렇게 몰래 달콤한 추억으로 포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참 쓰다.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어쩌자고 그대네요

다른 사람 품고 있겠죠 그 때처럼 우리처럼

...

별 거 아니죠 사는 게 다 그렇죠

...

불쑥 찾아와 겨를도 없이 찾아와 

고운 얘기로 찾아와 내 속을 뒤집고

그게 나쁘다 나쁜 상상에 아프다 

아픈 나여서 고프다 보고 싶어서


-이승환 '3+3' 앨범 수록곡 '참 쓰다'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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