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가 자식보다 낫다
올여름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7월 초. 부모님께서는 작은 어항 하나를 가져오셨다. 아버지가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어항을 들고, 어머니는 투명한 봉투를 갖고 현관 문을 열었다. 때 마침 집에 있었던 나와 동생은 의아한 눈빛으로 어항과 봉투를 바라봤다.
"응? 이게 뭐야."
"구피라고 열대어래. 옆집 가게 아저씨가 몇 마리 줬어."
동생의 짧은 물음에 어머니는 봉투 안에 담긴 것들을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봉투 안에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있었다. 애완동물은 물론 그동안 관상용 물고기도 기르지 않던 집에 온 열대어였다.
아버지는 거실의 텔레비전 옆에 어항 자리를 만들었다. 수족관에서 구입한 모래 자갈을 깔고, 기포 발생기를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구피를 어항에 풀었다. 열대어들은 낯선 공간을 몇 번 크게 원을 그리며 돌더니 이내 자기 집처럼 헤엄쳤다. 분홍색, 파란색…. 구피는 갖은 색깔들을 품고 있었다. 작은 몸뚱이에 박힌 색들은 거실 조명을 받아 더 화려해 보였다.
어항 속에 구피가 담기자 내 관심은 시들해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항 앞으로 더욱 바짝 자리를 잡았다. 얼굴이 어항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새 식구를 맞았다.
"어머, 어머 얘 좀 봐. 색깔 너무 예쁘네."
"얘네 둘은 싸우는 건가."
관상용 물고기를 바라보며 부모님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떤 대상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는 건 오랜만에 봤다. 다 큰 자식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올 줄 몰라서 더욱 그러시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최근에 아버지가 길을 지나가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관심을 보인다고 한 동생의 말도 떠올랐다.
우리 집은 애완동물을 키운 적이 없다.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자고 말하던 때에도 "털 날려서 안 된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지 않겠느냐"며 반대하셨다. 그랬던 부모님은 늦은 밤까지 어향 속 열대어를 지켜보느냐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날 저녁이 되자 어머니는 또다시 봉투를 하나 들고 오셨다.
"엄마, 작은 어항에 물고기 너무 많이 기르면 안 된대."
평소에 애완동물에 관심이 많던 동생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열대어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작은 어항에는 어제 새 식구가 된 5마리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수족관에서 샀어. 이 정도면 괜찮아."
옆집 가게 아저씨가 주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직접 수족관에서 구피를 사왔다. 어제와 똑같은 5마리. 결국 어항에는 10마리가 살게 됐다.
그날도 어머니는 구피 5마리를 어항에 넣은 후 오랫동안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작은 열대어들의 몸짓 하나에도 신기하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어머니는 볼륨이 한껏 높아진 텔레비전 소리 속에서도 여전히 어항 앞에서 구피들이 헤엄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엄마, 물고기들 종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응, 구피래 구피."
나도 잠시 어머니 옆에 앉아 어항 속을 봤다. 그러다가 요즘에 부모님과 대화가 많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최근에 새로 온 팀원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정작 집에서는 말없이 쉬었던 편이었다. 직장에 내가 오래 있었다고 한들 팀원들이 한 번에 바뀌어서 새로운 팀에서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직장에서 힘을 빼고 와서 정작 부모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다. 새 환경에 적응 중인 구피가 잠시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나보다 얘네가 더 효자네.'
생각해 보니 최근 부모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본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혹여 그랬다고 한들 그 자리에는 내가 없었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자꾸 말을 붙이시려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응, 밥 먹었어"라고 짧게 답하고는 방 침대에 누워 뻗어버렸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엄마, 오늘은 밖에서 저녁 먹을까."
"그래, 그러자. 퇴근하면 연락해."
구피 덕분에 못난 아들은 반성했다. 처음에는 이름도 낯설었던 구피가 여러모로 새 식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제는 구피들이 새끼를 낳으면서 어항은 더 좁아졌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더 넓은 새 어항을 들여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