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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Dec 12. 2019

엄마와 구피

열대어가 자식보다 낫다

 올여름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7월 초. 부모님께서는 작은 어항 하나를 가져오셨다. 아버지가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어항을 들고, 어머니는 투명한 봉투를 갖고 현관 문을 열었다. 때 마침 집에 있었던 나와 동생은 의아한 눈빛으로 어항과 봉투를 바라봤다.


 "응? 이게 뭐야." 

 "구피라고 열대어래. 옆집 가게 아저씨가 몇 마리 줬어."

 동생의 짧은 물음에 어머니는 봉투 안에 담긴 것들을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봉투 안에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있었다. 애완동물은 물론 그동안 관상용 물고기도 기르지 않던 집에 온 열대어였다. 


 아버지는 거실의 텔레비전 옆에 어항 자리를 만들었다. 수족관에서 구입한 모래 자갈을 깔고, 기포 발생기를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구피를 어항에 풀었다. 열대어들은 낯선 공간을 몇 번 크게 원을 그리며 돌더니 이내 자기 집처럼 헤엄쳤다. 분홍색, 파란색…. 구피는 갖은 색깔들을 품고 있었다. 작은 몸뚱이에 박힌 색들은 거실 조명을 받아 더 화려해 보였다.


 어항 속에 구피가 담기자 내 관심은 시들해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항 앞으로 더욱 바짝 자리를 잡았다. 얼굴이 어항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새 식구를 맞았다. 


 "어머, 어머 얘 좀 봐. 색깔 너무 예쁘네."

 "얘네 둘은 싸우는 건가."


 관상용 물고기를 바라보며 부모님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떤 대상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는 건 오랜만에 봤다. 다 큰 자식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올 줄 몰라서 더욱 그러시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최근에 아버지가 길을 지나가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관심을 보인다고 한 동생의 말도 떠올랐다. 


 우리 집은 애완동물을 키운 적이 없다.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자고 말하던 때에도 "털 날려서 안 된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지 않겠느냐"며 반대하셨다. 그랬던 부모님은 늦은 밤까지 어향 속 열대어를 지켜보느냐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날 저녁이 되자 어머니는 또다시 봉투를 하나 들고 오셨다. 

 "엄마, 작은 어항에 물고기 너무 많이 기르면 안 된대." 

 평소에 애완동물에 관심이 많던 동생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열대어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작은 어항에는 어제 새 식구가 된 5마리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수족관에서 샀어. 이 정도면 괜찮아."

 옆집 가게 아저씨가 주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직접 수족관에서 구피를 사왔다. 어제와 똑같은 5마리. 결국 어항에는 10마리가 살게 됐다.


 그날도 어머니는 구피 5마리를 어항에 넣은 후 오랫동안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작은 열대어들의 몸짓 하나에도 신기하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어머니는 볼륨이 한껏 높아진 텔레비전 소리 속에서도 여전히 어항 앞에서 구피들이 헤엄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엄마, 물고기들 종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응, 구피래 구피."

 나도 잠시 어머니 옆에 앉아 어항 속을 봤다. 그러다가 요즘에 부모님과 대화가 많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최근에 새로 온 팀원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정작 집에서는 말없이 쉬었던 편이었다. 직장에 내가 오래 있었다고 한들 팀원들이 한 번에 바뀌어서 새로운 팀에서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직장에서 힘을 빼고 와서 정작 부모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다. 새 환경에  적응 중인 구피가 잠시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나보다 얘네가 더 효자네.' 

 생각해 보니 최근 부모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본 적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혹여 그랬다고 한들 그 자리에는 내가 없었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자꾸 말을 붙이시려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응, 밥 먹었어"라고 짧게 답하고는 방 침대에 누워 뻗어버렸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엄마, 오늘은 밖에서 저녁 먹을까."

 "그래, 그러자. 퇴근하면 연락해."

 구피 덕분에 못난 아들은 반성했다. 처음에는 이름도 낯설었던 구피가 여러모로 새 식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제는 구피들이 새끼를 낳으면서 어항은 더 좁아졌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더 넓은 새 어항을 들여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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