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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Feb 28. 2020

감기라도 걸리면 사람 취급 못 받아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마음의 불신도 확산되는 병

 "감기라도 걸리면 사람 취급 못 받아요."

 한 달 전쯤 회사 저녁 미팅 자리에 함께 가자는 선배의 말에 농담 섞인 말을 내뱉었다. 우스갯소리였지만 막상 말을 하고 보니 영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사람 취급을 못 받을 거 까지야.'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미팅 자리를 마다한 이유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였다. 연초부터 일이 몰려 무리를 한 탓인지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슬며시 올라왔다. 평소 같았으면 별 고민 없이 미팅 자리에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소식을 접하다 보니 가벼운 감기 기운이라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내 수그러들 줄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라 전역에 퍼졌다. '감기라도 걸리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농담은 더 이상 가벼운 말이 아니게 됐다. 기침이라도 하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됐다.


 그동안 유행병에 둔감한 편이라 지난달까지는 마스크를 굳이 착용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면 답답하기도 했고, '설마 내가 걸리겠어'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어머니와 동생이 집에 마스크를 사놔야 한다고 할 때만 해도 그저 요란스러운 반응이라고만 여겼다.


 최근 2주일 사이에 세상의 풍경이 달라졌다. 출퇴근 지하철이 특히 그렇다. 1월에는 승객 절반만 마스크를 썼다면,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났으니 이동 경로 파악 조차 별 의미가 없다. '어딜 가든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격상된 것에 비례해 마스크의 사회적 위치도 격상됐다. 


 나도 어딜 가든 마스크를 쓰고 있다. 질병 예방과 더불어 혹여 다른 사람이 느낄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 싶어 마스크를 챙겨 쓴다. 어쩌다 보니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목이 간지러워 기침이 나오는 걸 의식적으로 참게 된다. 이렇게 유행병 때문에 내 행동까지 영향을 받는 것은 처음인 듯싶다. 과거를 되돌아봐도 유행병 때문에 마스크까지 썼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표현 뿐이 아닌 실제로 마스크를 쓰며 피부로도 와 닿는 분위기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의 풍경도 달라졌다. 외부 미팅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고, 회사 또한 재택근무 중이다. 재택근무 시행 전에는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마스크를 꼭 써야 했다. 배식을 받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줄을 서 있는 직원들 사이에 있으면 생경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식당에서 다른 팀 직원과 마주해도 가벼운 목례 정도로 인사를 대신했다.


 낯선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는 게 꺼려지는 분위기다. 평소에 알던 사람들의 동선까지 확인 할길 없으니 지인이든 낯선 이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낯선 이들을 향한 경계심에, 질병에 대한 두려움까지 겹쳐지니 가뜩이나 냉냉하던 공공장소는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반대로 차갑게만 느껴진다.


 확진자에 대한 정보 공유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반면 매체에서는 초기 단계에서 확진자 소식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경향도 있었다. 확진 예방을 위한 정보 전달 수준이 아니라 은연중에 확진자 자체를 비난하는 듯한  기사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그 대상이 확진자에서 정부, 정당, 단체 등으로 옮겨갔다. 비판할 만한 부분은 비판하는 것은 옳지만, 여론을 자극하는 듯한 기사 내용들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정말 국민의 건강이 걱정이 돼서 비판을 하는 건지, 이를 이용하는 건지 경계선은 언제나 그렇듯이 분명하지 않다. 


 이제는 확진자와 관련한 찌라시까지 돌고 있다. 확진자의 남녀 관계까지 소문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역시나 확진 예방을 위한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뒤숭숭한 최근의 분위기와 얽히며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병에 걸리면 몸도 아프고, 신상까지 털리게 되는 셈이다.


 한 달 전에 가볍게 말한 "감기라도 걸리면 사람 취급 못 받아요"라는 농담을 괜히 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미처 이 말이 실제로 사람들 사이를 파고드는 말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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