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면접,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번 써보세요." 처음 입사한 회사의 면접 자리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30분 동안의 면접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는 대표님의 질문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당시 축구 국가대표 박지성이 모델로 나왔던 면도기 광고가 떠올랐다. 박지성이 면도기를 들고 "써보세요"라고 멘트 하는 광고였다. 다른 면접 자리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느껴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 나왔다. 당시 면접관들은 한바탕 웃음을 지으셨다.
입사한 지 1년 후 당시 면접관이셨던 한 분은 회식 자리에서 그날을 기억하셨다. "그 말만 없었으면 너 안 뽑았지." 스스로 꽤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결국 대외 활동이나 업무에 관한 대답이 아닌 마지막 말 한마디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면접관들의 질문에 내가 했던 답들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른 면접자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대답뿐이었다. 그분은 면접이 끝난 후 나보다는 함께 면접을 봤던 지원자를 더욱 눈여겨봤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을 던진 대표님의 뜻에 따라 내가 뽑히게 됐다.
나는 면접에는 영 소질이 없다. 말 주변이 좋은 편도 아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내게 시선이 쏠리는 순간들을 즐기지 않으니 당연히 면접을 잘 볼리가 없다. 그래도 취업준비생으로 수차례 면접을 본 기억을 더듬어보면 가장 중요했던 건 '면접관의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 억지로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어울리는 멘트가 면접관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면접 처음이나 마지막, 혹은 중요한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멘트 몇 가지 정도를 준비하는 게 좋다.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하거나 뽐내는 게 아닌, 분위기에 맞춰서 재치 있는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면접관들의 머릿 속에 남는다. 멘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첫 회사에서 몇 년 근무 후 경력직으로 두 번 회사를 옮겼다. 그때마다 느꼈던 건 면접관들의 성향이 나와 맞아야 면접이 수월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직한 회사 외에도 몇 군데 회사에서 미팅 제의가 와서 회사 팀장들을 만났는데, 면접에서 나와 맞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면 팀장들도 대체로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당연히 그 회사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면접은 소개팅과 비슷한 면이 많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할 것 같은 상대에게 끌리는 법이다. 면접에서도 통하는 얘기다.
물론 준비를 잘해야 하고, 말을 똑 부러지게 해서 면접을 잘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취업 면접은 숫자로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헤어 스타일, 옷차림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면접 팁은 보편적으로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탈락의 변수를 줄이자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 너무 기죽지 않아도 된다. 면접 탈락 여부는 단순히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근무 중인 회사에서 면접관으로 인턴 직원 면접에 들어간 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면접자와 면접관의 경험을 하게 됐다. 지원자들의 이력들은 말 그대로 화려했다. 학점은 물론 영어 성적이 만점에 가까운 지원자들도 드물지 않았다. 지원서 항목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회사, 업무와 관련된 직종의 경험이었다. 사실 관련 대외 다양한 경험을 했어도 관련 활동이 전무한 사람과 실무에서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누구든 관련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하지만 지원자가 업종 관련 경력들이 많다면, 면접관들은 해당 지원자를 선발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면이 있다. 모든 조건이 같은 상태라면 경력 한 개라도 더 있는 지원자를 뽑을 타당한 이유를 무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면접관들은 면접을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이 아닐 경우가 많다. 평소 업무를 보다가 면접 시간에 면접관으로 참여한다. 물론 인사팀도 면접을 함께 보지만 해당 팀의 실무자의 의견이 대체로 중요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면접자는 회사의 전반적인 정보 등을 숙지하되 해당 업무에 대해 깊이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아무리 외부에서 정보를 모으고 공부한다고 해도 실무자가 겪는 현실과 비교할 수 없다. 회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그 속에서 기본 정보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게 좋다. 회사에 대한 관심도와 문제 해결 사고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관들의 질문에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 때도 있다. 억지로 준비했던 대답을 끼워 맞춰서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노력해도 실무자들은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대강 답변을 해도 다시 심화된 질문을 받으면 밑천이 드러날 뿐이다. 면접을 보기 전에 자신이 알지 못한 질문이 나오는 상황을 그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의외로 면접에서 "잘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긴장하고 당황해서 이 말 저 말을 가져다가 붙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언변이 뛰어난 지원자의 합격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짧다고 하면 짧은 면접 시간 동안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면접자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면접자들이 다 합격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직원을 뽑는 팀에서 사전에 팀에서 원하는 인재를 생각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팀에서 '외국어 능력이 좋은 직원이 필요하다'라고 하면, 지원자 중 외국어 능력이 좋은 면접자들에게 더욱 시선이 간다.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은 직원이 필요하다'는 상황에서는 지원서의 이력보다는 면접자가 대화하는 방법이나 상대의 말을 듣는 자세 등을 본다. 같이 면접을 본 지원자들이 '이 사람은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탈락할 때에는 팀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맞는 다른 지원자가 있어서다.
결국 면접에서 어느 정도 준비가 가능하지만, 합격 여부는 굉장히 많은 변수에 달렸다.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좌절하기보다는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정도로 툴툴 털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자책하면 다음 면접에서 조급해지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보여주지 못할 수 있다. 뻔한 말이겠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준비하고 면접을 보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과는 자신의 몫과 면접관의 몫 반반으로 생각하면 된다.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고 단 번에 연인이 되기 어렵다. 내가 상대에게 호감을 가져도 상대가 나에게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상대에게 계속 매달리는 것보단 내 취향에 맞는, 그와 비슷한 상대와 또 만나보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원하는 산업군을 생각해 준비한 다음, 관련 회사는 폭넓게 봐야 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첫인상이 좋은 친구가 있고,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친구가 있다. 말주변이 없는 지원자라면 최대한 기본을 지키되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과 맞는 회사와 만나는 것도 좋다. 자신이 꿈꾸던 회사도 막상 입사해서 경험하면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경우도 허다하다. 그 회사를 들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산업에서 직접 일하며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 산업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빠른 시간 안에 또 다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