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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Mar 15. 2020

층간소음? 아이가 좀 뛰면 어때요

뛰니까 아이인 거죠

 약속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층에 도착했을 때 마스크를 잊고 나온 게 생각났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부랴부랴 다시 엘리베이터 우리 집이 있는 10층 버튼을 불렀다. 마음만 급해서 신발을 후다닥 벗어놓고 마스크를 챙기고 뛰어나왔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한 층 위인 11층에 머물러 있었다. 


 '띵.' 11층에서 10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는 특유의 엘리베이터 벨 소리를 냈다. 엘리베이터에는 우리 집 바로 윗집에 사는 가족이 타고 있었다.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 때의 아주머니와 그의 딸 그리고 그의 딸이 낳은 딸. 3대가 모인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하니 괜히 불챙객이 된 것만 같았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넣었다. 머쓱한 기분이 들어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1층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삼촌한테 '뛰어다녀서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드려." 

 정적을 깨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주머니의 따님이었다. 그분은 다시 자신의 딸에게 나에게 '죄송하다'며 인사하라고 했다. 아이는 멀뚱멀뚱 영문을 모른 체 서있었다. 마스크를 낀 따님의 표정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미안한 눈빛으로 아이에게 인사를 재촉했다.


 "빨리 '제가 너무 뛰어다녀서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해야지.'

 아이는 3대가 있는 공간에 낯선 이가 등장해서 인지 자신의 엄마 얼굴만 쳐다봤다.

 "아이가 뛰어다녀서 많이 불편하시죠? 죄송해요."

 결국 아주머님의 따님, 아이의 엄마가 참다못해 사과했다. 아이는 자신의 엄마와 나에게 시선을 번갈아가며 뒀다.

 "아니에요. 아기가 뛰는 게 당연한 거죠."

 연달아 죄송하다는 사과에 괜스레 나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나는 아이가 있는 3대가 먼저 나가도록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먼저 가세요."

 "아니에요. 먼가 가세요."

 "저희는 같이 나가면 돼요. 먼저 가세요."

 그 짧은 순간에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에는 내가 먼저 내렸다. 대신 뒤이어 나올 윗집 3대를 위해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놓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아이가 뛰어다녀서 미안해요." 

  윗집에 사는 가족들은 몇 번이나 아이가 뛰어서 미안하다며 사과, 귤 등을 그릇에 담아 우리 집에 나눠주셨다. 과일을 받은 후 어머니는 그 그릇에 다른 먹을거리를 담아서 돌려주셨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를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몇 달 전쯤에도 윗집 아주머니께서 과일을 가져다주시면서 아이도 같이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 

 "삼촌한테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

 네 살쯤 된 아이는 인사말은 없었지만 가만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른 저녁에서 밤 사이에 어김없이 위층에서는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길게 들렸던 적은 없었고, 몇 번 뛰나 싶으면 이내 소리가 잠잠해졌다. 


 지난 설 연휴가 끝난 후에는 며칠간 잠잠했던 아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저 놈 다시 집에 왔나 보네."

 가만히 TV를 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말했다. 

 "아빠 엄마 집에 갔다가 다시 왔나 봐."

 아버지의 말에 여동생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 

 우리 가족이 층간소음 아닌 층간소음을 겪은 지도 2년이 넘었다. 지난 1년 동안에는 윗집 아주머니의 첫 째 손자가 뛰는 소리를, 최근 1년 동안에는 둘째 손자가 뛰는 소리를 들었다.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 윗집 아주머니의 따님은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부족하고, 돈도 들어서 윗집 아주머니가 손자를 돌보고 있다. 따님은 금요일에 집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간 후 주말을 보내다가 다시 어머니에게 자식을 맡기고 있다.


 이따금씩 예민하거나 피곤한 상태에서 윗집 아이가 뛰는 소리가 들리면 사실 짜증이 날 때도 더러 있긴 하다. 우리 가족들은 남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성인들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발소리에 담긴 그 가족의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다. 예민한 편인 가족들이 층간소음을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가 좀 뛰면 어때요. 뛰니까 아이인 거지."

 우리 가족은 이렇게 윗집 층간소음을 정리했다. 윗집 가족이 항상 신경 쓰기도 하지만, '아이는 뛰어야 아이'라는 것이 우리 가족의 결론이었다. 앞으로 1,2년은 더 공동육아를 하듯 층간소음은 무던히 넘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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