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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수 Mar 24. 2020

확진자 안 되려다 확찐자 됐다

체중계가 아닌 일상이 고장났다

 "오빠, 체중계가 이상해."

재택근무를 끝내고 뒹굴거리던 귓가에 불쑥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체중계 배터리라도 나갔나 싶어 거실로 나가자 동생은 머쓱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응? 왜?"

 "며칠 사이에 몸무게가 확 늘었어. 이상하네. 이 체중계 2,3kg 더 나가는 거 아니야?"

 동생의 말을 듣자 며칠 사이에 체중이 늘어버린 내 몸뚱이가 생각났다. 하지만 이내 나도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나도 요즘에 몸무게가 늘었다고 나오더라고."


 나와 동생은 알고 있었다. 체중계는 정상이라는 것을. 체중계가 살아 숨쉬지 않고서야, 체중을 재는 사람의 다이어트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딥러닝을 하지 않고서야, 자신의 위에 올라가는 사람의 체중을 고무줄처럼 늘릴 리 만무했다. 당황스러운 몸무게의 숫자를 망각하기 위해서는 체중계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30분 뒤에 부모님이 집에 도착하셨다. 근무를 마치고 침대와 한 몸으로 엉켜 붙어있던 내게 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체중계가 고장 났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조금 전에 동생과의 일도 있어 살며시 거실로 나왔다. 어머니 옆에는 동생이 붙어있었다. 역시나 머쓱한 웃음과 함께였다. 

 "그렇지? 체중계가 이상하다니까." 

 동생은 어머니의 기운을 북돋아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것인지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쯤 되면 체중계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하지만 말이 없는 체중계가 표현할 수 있는 건 숫자뿐이다. 자신을 올라탄 사람의 체중을 아주 냉정하게 숫자로 찍어낼 수밖에 없다. 배터리가 나가지 않는 이상 전자 체중계에 오차가 생길 리 없었다. 어머니와 동생은 애꿎은 체중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에 들어와 생각해보니 조금씩 미스터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동생은 올해부터 의욕적으로 다니던 필라테스 학원을 한 달 사이 다니지 못했다. 어머니는 집 앞 헬스장에서 운동할 수 없었다. 필라테스 학원이나 헬스장이나 코로나 확진이 염려되어 잠정 휴업을 한 탓이다. 체중계가 고장났던 게 아니라 그저 평범했던 일상이 변했다.


 내 처지도 비슷했다. 3주 전부터 재택근무를 해서 좀처럼 집 밖을 나올 일이 없었다. 친구들과 약속도 몇 번을 미뤘고, 회사에서도 근무시간에는 절대 집에서만 근무를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감기라도 걸리면 회사에 보고를 해야 해서 외출을 자제했다. 그리고 얻은 건 '인생 최고 몸무게 달성'이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난리가 난 통에 몸무게를 운운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배부른 소리 같다. 다들 조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택근무를 해서 살이 쪘다고 투덜대는 것도 그렇다. 결국엔 고장 난 건 체중계가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집에만 있다 보니 이따금씩 우울해지는 느낌도 든다. 그렇게 시달렸던 상사들이 옆에 없으니 편할 줄만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도 어디에서든지 잘 지낸다고 생각한 편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코로나에게 한 방 먹은 셈이다. 


 단절. 살면서 이 단어가 그렇게 크게 와 닿았던 적은 없었다.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는 건 단절이 아니었다. 단절이라는 단어 속에 자신의 자유의지는 없다. 타의에 의해 수동적으로 유대 관계를 끊기는 상황이 단절이었다. 



 

 확 찐 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러닝화를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주말마다 축구동호회에서 운동을 했지만, 운동장이 개방이 안 되는 바람에 2달 가까이 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잘하는 거라고는 무작정 뛰는 것이니 러닝화를 구입했다. 새 러닝화가 내 몸을 집에서 바깥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고리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주 가까이 매일 같이 1시간씩 뛰었지만 체중은 점점 불어나고 있다. 역시나 체중계 잘못인 것일까. 나잇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억울하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직접 마주하고, 어떠한 일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건 참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다. 물건을 들어 옮기는 일만이 노동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몸무게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도 일련의 고된 노동이 있어서였을까.


 확 찐 자에서 벗어나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싶다. 말 그대로 지긋지긋하지만, 이제는 그 지긋지긋함이 그리울 정도다. 확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지만, 확 찐 자가 됐다. 그리고 늘어난 체중만큼이나 2달 전의 그저 그런 하루들이 조금은 그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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