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나를 믿고 나아가는 것
기자로 6년, 회사 홍보팀 3년. 글재주는 없지만 글쓰기를 좋아해 시작한 사회생활의 이력서다. 수려한 글을 쓰는 작가들에 비해 비루한 능력을 갖고 그나마 돈벌이를 잘하고 살아왔다.
이제는 글쓰기가 편해질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이 좋아져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면 글이 완성되지만 언제나 백지를 앞에 두면 눈앞은 캄캄해진다. 누구나 그렇다고는 한들 그래도 글을 쓰고 월급을 받아가는 입장에서는 회사에 미안할 때가 많다.
당연히 기자나 회사 홍보팀이나 글로만 먹고살 수는 없다. 기자도 취재원을 만나야 하고, 반대로 홍보팀 직원은 기자나 타 부서 사람들을 자주 만나야 하니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많다. 글쓰기는 업무 시간 중 극히 일부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능력이 중요한 건 해왔던 일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일이어서다. 취재를 아무리 풍성하게 한들 글이 정돈되지 않으면 읽는 사람에게 잘 도달되지 않는다. 홍보팀도 보도자료에 정보들을 정성스럽게 담아내지 못하면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된다.
이렇듯 글쓰기로 밥을 먹고살려고 하니 항상 고민이 많다. 처음 기자가 되고 난 후 형편없던 실력보다야 많이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요즘에도 자주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않는다.
최근에는 상사들에게 항상 지적을 받는다. "잘 쓰던 애가 왜 이러느냐"라는 농담에서 시작된 얘기는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어"라는 질책으로 마무리된다. 여러 지적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떨어지고, 내가 쓴 보도자료 글에도 영향을 미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검수하는 사람의 기준이 매번 달라지니 더욱 글 쓰는 게 어렵다. 글쓰기에 기준은 없다지만 그 기준이 항상 바뀌면 감을 잡기가 어렵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지?"라는 말은 그야말로 최악의 조언이다. 글을 봐주는 이에게 '느낌' '센스' 등의 말이 나오면 글에 대한 고민은 다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옮겨간다.
반면에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을 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을 줘야 서로 편하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실력을 늘릴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글은 참 정직한 행위 중에 하나다. 흰 백지를 채워나가다 보면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마다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 나온다. 말은 그 순간에 속아 넘어가기 쉽지만, 이보다 글은 어렵다.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의 표정, 목소리 등 다른 요소들이 많은 데 비해 글은 온전히 글로만 보이는 탓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의 마음까지는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답은 기운을 내며 내 자신을 믿고 글을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사, 보도자료뿐만 아니라 일상의 글도 그럴 테다.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꼼꼼히 살피되 자신만의 힘으로 끌고 가야 한다. 비록 상대의 기준이 이래저래 흔들려도 분명 그 이유는 있기 때문이다.